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야곱의 사다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6 조회수893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주간 월요일 - 야곱의 사다리

 

 

어제 손님들이 와서 바티칸을 또 가이드했습니다. 바티칸 박물관 안에는 미사 할 때의 성작처럼 생긴 커다란 빨간 대리석 욕조가 있습니다. 바로 네로 황제의 욕조입니다. 높이가 사람의 키 정도 되는 욕조라 청년들은 서로 “저길 어떻게 올라갔을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답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계단이나 사다리가 있었겠지.”

그렇습니다. 계단이나 사다리가 없다면 높은 곳에 오르락내리락 할 수 없습니다. 사다리는 바로 혼자 힘으로는 오르거나 내려올 수 없는 높이를 연결시켜주는 길이요 통로입니다.

 

구약성경에 이 사다리(계단)가 나옵니다. 바로 베텔에서 야곱이 꿈을 꾸었을 때입니다. 하나의 사다리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고 있었고 하늘과 땅 사이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인간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땅에서 났으니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땅도 인간 때문에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느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는 것처럼 죄의 땅이 아닌 깨끗한 하늘에만 머무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죄의 땅으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늘에 계신 분이지만 동시에 육체를 취하신 인간이시기 때문에 땅에도 계신 것입니다.

따라서 야곱이 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는 바로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어떤 누구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늘나라로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나 ‘참말 야훼께서 여기 계셨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하며 그 곳이 곳 ‘하느님의 집’ (성전, 베텔)임을 깨닫고 베고 잤던 돌에 기름을 붓고 나중엔 그 곳에 제단을 세웁니다.

기름은 성경에 성령님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라고 당신이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라고 하셨듯이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부어지고 그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발을 통해서 세상에 내려오시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 위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와 물이 그리스도의 몸을 타고 발로 흘러 땅에 떨어져 땅이 정화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야곱이 베고 잤던 돌에 기름을 발랐던 것은 그리스도로부터 자신의 머리 위로 성령의 은총이 흘러 들어옴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는 이와 똑 같은 행위를 합니다. 바로 예수님의 발에 엄청나게 비싼 나르드 향유를 바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습니다. 결국 그 향유는 자신의 머리를 향기롭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야곱의 사다리의 발치에 머리를 대고 하늘로부터 오는 그 은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라자로의 집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할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나 마리아만은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마르타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예수님의 발치에서 그 분의 말씀을 듣는 것, 그 것이 내 안에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유일한 스승으로 모시고 그 분으로부터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자신의 몸에도 배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처음으로 발현했던 마리아 막달레나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라는 결정적 근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같은 사람임을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 막달레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예수님께 “랍부니”, 즉 ‘선생님’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추상적인 무엇이 아닙니다. 그 분을 스승님으로 삼고 배우고 그 분이 산 것처럼 살려고 하는 아주 구체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도 읽거나 공부하지 않고 미사도 주일미사만 간신히 하고 성체 밑에 자주 앉아 있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분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