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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6 조회수1,031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4월 6일 성주간 월요일
 
 
 
 Mary took a liter of costly perfumed oil
made from genuine aromatic nard
and anointed the feet of Jesus and dried them with her hair;
the house was filled with the fragrance of the oil.
(Jn.12.3)
 
 
제1독서 이사야 42,1-7
복음 요한 12,1-11
 
 
어떤 분으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하느님을 믿기 힘듭니다. 하느님은 보이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내 기도를 잘 들어주시는 분도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기도를 해도 침묵하기만 하시는 하느님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분들은 이분의 말씀에 공감이 가신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저 역시도 옛날에는 이러한 마음을 갖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얼마큼이나 하느님을 믿기 위한 노력을 했었는가 라는 질문을 해 보고 싶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뜻을 나약한 인간이 알기란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행한 약간의 노력만을 부각시키면서 하느님께서 침묵만 하신다고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럴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3년의 공생활을 위해서 자그마치 30년을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왜 잊고 있을까요? 또한 많은 성인 성녀들이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평생을 주님의 뜻에 맞게 살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보지 않고 있을까요?

최소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내는 것이 남는 장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입니까? 자기가 행한 약간의 노력으로 최고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고 하느님을 믿지 않겠다고 과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장사가 먼 미래만 보고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약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먼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그 손해를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바로 지금 코앞의 문제만을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나중에 우리가 가야할 길인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위한 믿음의 투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장사도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하지요. 우리의 믿음도 먼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대화를 나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았던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립니다. 바로 이 모습을 보고서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지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마리아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행했던 것이지요. 이 노력이 먼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가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이스카리옷은 바로 눈앞에 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합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엄청난 죄를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작은 믿음으로 감히 하느님을 판단하는 죄를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보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먼 미래에 대한 확실한 투자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상대방보다 나 자신에게 더 해롭다(몽테뉴).



내 탓으로 돌리면(‘좋은 글’ 중에서)

사람을 사랑하되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거든...
나의 사랑에 부족함이 없었는가를 살펴보세요.

사람을 다스리되 그가 다스림을 받지 않거든
나의 지도에 잘못이 없었는가를 살펴보세요.

사람을 존경하되 보답이 없거든...
나의 존경에 부족함이 없었는가를 살펴보세요.

행하되 얻음이 없거든...
모든 일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세요.

내가 올바르다면 천하는 모두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우리는 먼저 남을 탓 할 때가 많습니다.
잘못은 내게 있는데, 내가 오해받을 일을 했는데
남의 탓으로 우선 돌리면서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내 잘못인 줄 알면서도, 내 실수인 줄 알면서도
알량한 자존심과 유치한 자기체면 때문에
먼저 다가가 사과하지 못 할 때가 많습니다.

"나" 라는 존재가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은데,
"나" 라는 존재가 한번 숙인다고 버릴 명예도 없는데
먼저 다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미안해" 그 한마디면
다시 사랑 할 수 있고 다정한 이웃이,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왜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화해를 청하는 큰마음을 갖지 못 할까요.

내가 먼저 숙이고, 이해하고, 내가 먼저 인사하고, 사과하면
가슴이 뭉클해지는 따뜻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데
왜 나는, 왜 우리는 성큼 그에게 다가가지 못 할까요.

지금은 그의 잘못이 크다 해도 내가 먼저 큰 사람이 되어
마음을 먼저 열기만 하면
그 사람은 오히려 낯이 붉어지며 미안해 할 텐데
그 아름다운 일을 욕심을 버리고 왜 먼저 못 할까요.

내가 먼저 "미안해" 내가 먼저 "고마워"
내가 먼저 용서하고 내가 먼저 배려하면...
세상은 아늑하게 느껴지고 정겨운 사람들만 보입니다.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따뜻해지고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우리는 왜 더 이상 마음을 열지 못 할까요.

내가 먼저 큰 사람, 내가 먼저 큰마음 되어
긍정의 말들로 그에게 다가가 먼저 손을 잡아주는
진실 어린 마음을 나누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먼저 앞세우지 말고 남을 먼저 생각해주는
사랑의 훈훈함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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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dream - For Your Happiness
Clay Aiken - On the wings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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