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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2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6 조회수477 추천수4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성주간 월요일]

 <내 장례 날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도유사화(塗油事話)는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향유를 붓는 여인과 장소는 각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인 요한복음서에는 라자로의 집에서 마리아가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 드리고 있으며 마태와 마르코복음서에서는 나병환자인 시몬의 집에서 어떤 여인이, 루카복음서에서는 바리사이의 집에서 죄 많은 여인이 발을 씻어 드린 것으로 각각 다르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든 복음서에 도유사화가 기록된 것은 예수님은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의도로 이해하고 있으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장례일이 그리 멀지 않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처럼 향기가 가득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복음처럼 마리아가 예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지극정성으로 섬기면 이 세상은 향기가 가득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향기는커녕 악취만 가득한 것은 잘못된 믿음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른다면 이 세상은 향유 냄새가 가득한 그런 세상이 저절로 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이 되지 못한 것은 유다 이스카리옷 같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이 말은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말입니다. 아마 이 말을 예수님이 하셨다면 저는 저절로 아멘! 아멘!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둑인 유다가 말하였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저희가 유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돈에 눈이 먼 것처럼 우리는 진리가 아닌 다른 우상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훌륭한 가르침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유다의 말처럼 일반인들에게는 그렇게 들릴 것입니다.

유다의 말에 예수님은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이르셨습니다. 유다의 지적에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 옹색하기 그지없는 말씀입니다. 당신을 섬기는 것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우선한다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말씀을 잘못 이해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오해할 수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는 예수님의 몸으로 설명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것보다는 교회를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는 말씀이므로 일부 교회에서는 교회 지상주의로 이를 악용할 소지도 있어 보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신 교회는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생활공동체를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의 교회처럼 교리를 만들어서 당신을 교주로 섬기는 지금의 교회와는 다른 모습의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지금의 교회가 생겨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요즘은 십자가를 세우고 간판만 내 걸면 자칭 교회이므로 성경의 왜곡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였을 때에는 예수님의 육신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를 지칭하신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말씀은 여인은 진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방해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그리고 우리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진리에 모두 종속되므로 진리보다 더 우선하는 가치는 없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묵상하면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선후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유다와 같은 사람들은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내 세우며 꼭 딴죽을 걸고 있습니다. 하여튼 도둑심뽀를 가진 사람들의 공통점은 말만 번지르게 하면서 실천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이런 짓들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순위를 따져서 선행을 실천하려면 망건 쓰다가 장 파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선행은 눈에 보이는 것부터 우선적으로 실천해야 함을 알려주시는 말씀으로 새겨 두겠습니다.  

시신에 향유를 바르는 것은 시신이 부패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은 불의에 의해서 진리가 빛을 잃고 있는 것이므로 당신의 시신이 부패되지 않도록 즉, 진리의 빛이 다시 되살아날 수 있도록 향유를 아껴두라는 뜻일 것입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예수님께서 당신의 장례 날을 대비하여 향유를 남겨두라는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닐 것입니다. 육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요한 6.63)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그것도 죽은 육신에 연연한 모습은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고 예수님의 평소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른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하였습니다. 이 땅의 불의한 세력들이 불의를 저지른 것은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고 묵과할 수 있지만 영원한 생명이며 진리이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진리의 삶으로 다시 태어난 라자로를 죽이려는 그런 짓만은, 생명을 경시하고 인권을 경시하는 그런 짓만은 제발 멈춰주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진리를 섬기는 여인을 방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는 진리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 교회와 저희들은 그 분들에게 늘 힘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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