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죽음을 묵상하면서 - 마리아콜베 수사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6 조회수823 추천수10 반대(0) 신고
                                     
 

죽음을 묵상하면서


유기서원자 마리아콜베 수사


   수련기 때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가르멜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어느 한 자매님이 가르멜 수녀원에 들어왔단다. 그래서 한 노 수녀님이 그 자매님을 데리고 어딘가를 갔다고 한다. 그곳은 바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서 묻힌 묘지였다. 그리고는 매일 이 죽음을 묵상하라고 노 수녀님께서 말씀하신 후 그 자매님은 매일 죽음을 묵상하면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 거룩한 성녀가 되었더라는 이야기이다.


   우리 수도원에 현재 도미니코형제님 부부가 2개월째 수도원 밑에 있는 통나무집에서 살고 계신다. 처음엔 한 일주일만 쉬었다 가신다고 하셨던 것이 지금 2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도미니코 형제님이 처음 이곳 수도원에 방문했을 때는 우리 학생수사들이 막 여름 피정에 돌입하였던 시기였다. 그때 처음 본 그분의 얼굴은 어둡고 그늘이 깊은 모습이었다.


   나중에 피정 끝나고 안 사실이지만 그분의 막내아드님이 2년 전에 이탈리아로 유학 갔다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아드님을 못 잊어서 시름시름 앓다가 우울증에 걸리신 것이다. 현재 그분은 아들의 죽음을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다시금 건강을 회복하고 있으시다.


   얼마 전 내 자신의 주보성인인 마리아콜베성인 축일(8월14일) 다음날인가 집에서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는 원장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집에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본당 신부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월요일에 쉬시고 화요일에 아침식사를 안 나오셔서 사람들이 가보았더니 이미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직 41세의 젊은 나이시기에… 안타까웠다.


   하느님께서 주신 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내 주변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분들이 주님 안에서 평안의 안식을 얻도록 기도를 하면서도 이런 죽음들이 나에게 말해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삶이기에 오늘 하루가 너무 소중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기도할 때 조금이라도 졸지 않고 열심히 하느님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리고 아침청소나 오전 작업에도 미적거리지 않고 기쁘게 최선을 다해보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성무일도를 마치고 먹는 점심식사는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손으로 직접 배고프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감사스럽다. 형제들하고 보내는 공동휴식시간에는 형제들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도 나누고 형제들 이야기에 크게 웃으면서 보내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오후 묵주기도 시간에 묵주를 돌리면서 성모님께 기도하는 이 시간은 너무 든든하다. 내 자신이 잘 살든 못 살든 성모님은 언제나 우리들 편들어서 아버지께 전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한 것이다. 오후에 컴퓨터 책상 앞에서 열심히 성경을 뒤적거리면서 이 책 저 책을 보면서 논문을 써 내려가면서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늦게 수도원에 들어와서 이렇게 하느님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모든 이들에게 그저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끝기도 후에 방에 혼자 있으면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워낙 골짜기에 들어선 수도원인지라 밤엔 벌레소리와 새소리뿐이다. 그나마도 수도원의 방음 잘되는 이중창문을 닫아버리면 그땐 정적이 흐른다. 이때 정말 하느님과 단둘이 있게 되는 시간이다. 이때 기분은 너무 행복하다. 사랑하는 분과 단둘이 있는 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자기 전 성모님께 다시 인사드리고 주님께서 주신 하루를 감사드리면서 잔다. 이때 침대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하루의 수고도 접으면서 편안히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을 묵상하면 오늘 주어진 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 스럽다. 때론 형제를 미워하다가도 바로 하느님께 잘못을 빌고 그 형제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형제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게 된다.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생명이며 시간인 것이다.


   오늘 허락된 이 소중한 하루를 짜증내면서, 침대에서 뒹굴면서, 형제들을 미워하면서, 대충 대충 청소하면서, 기도시간에 졸면서, 과거의 어두운 기억에 묶여서 분노하면서, 오늘을 잊고 항상 내일만 바라보면서 보내기에는 정말, 정말 소중한 오늘인 것이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내 뜻대로 안된다고 불평하다가도 얼마나 가진 것이 많은지,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셔서 오늘 하루 너무나 많은 것을 허락하셨는지를 생각한다면 그 불평은 쑥 들어간다.


   이렇게 소중한 하루를 더구나 수도생활로 불러주신 그 은총에 어떻게 대충 살아갈 수 있겠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이 항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등잔불에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늘 깨어서 신랑이 오기를 준비하는 열 처녀의 심정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 까.


   오늘 하루 열심히 사랑하면서 언제라도 주님께서 불러주셨을 때 그래도 주님 앞에서 자랑은 안 되지만 사랑하려고 애썼노라고 말씀드릴 ‘거리’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