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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 4.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06 조회수479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4.6 성주간 월요일
                                                              
이사42,1-7 요한12,1-11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요즘 50대 전후의 많은 분들을 만나 면담하다보면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자주 듣곤 합니다.
 
중년 넘어 한 번쯤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로다.”(시편27,1ㄱ).

이런 면에서 오늘 독서와 복음의 요약과도 같은
화답송 후렴이 절실히 마음에 와 닿습니다.
 
참 관상가의 고백입니다.
 
우리의 빛이자 구원인 주님을 잃어버릴 때
십중팔구 허무와 무의미의 어둠에 휩싸여
죽음의 유혹을 겪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힘을 내어 마음을 굳세게 가져라.”(시편31,25)

아침성무일도 중 시편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진정한 힘은 주님께로부터 오는 내적 힘입니다.
주님께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둘 때
샘솟는 내적 힘입니다.
 
이런 내적 힘이 있어야 안으로부터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밖이 견고해도
절망으로 안으로부터 무너지면 감당할 길도 없거니와
그 누구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수십 년 전 결혼했던
선배 교사로부터 들은 말도 생각납니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난다네.”

가끔 인용하면 많은 이들이 공감합니다.
 
보통은 경제가 바탕이 되어야 사랑도 보존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도 살림이 어려워지면
다툼이 시작되고 급기야 파경을 맞이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가 전부는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로
내적 힘을 지닌 자들은 예외입니다.
 
가난보다 더 큰 힘이 믿음의 내적 힘이요,
오히려 가난을 통해 단련되고 정화되는 믿음의 사람들을,
가난의 위기를 기도와 믿음으로 통과하는
내적 힘을 지닌 부부들을 가끔 대하곤 합니다.

하느님께 힘을 받아야
내적 힘을 지닌 관상가로 살 수 있습니다.
 
관상가의 소명은
소수의 엘리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신자들 누구나의 소명입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주님의 종은 관상가의 진면목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이렇게 주님께서 사랑으로 선택하여 붙들어 주고
당신의 영을 넣어 줄 때
충만한 내적 힘의 관상가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그 관상가의 모습이 다음의 주님의 종의 모습입니다.
 
언제 읽어도 풍부한 영감을 주는 구절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이 없이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이런 주님의 종이 약한 듯 보이나 실상 강한 사람입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넉넉하고 편안한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입니다.
 
관상가의 진면목입니다.
 
끊임없이 주님의 영을,
주님의 생명과 빛을 받아야 가능한 삶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주님의 종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 주님 앞에 있는 주님의 두 종인,
마리아와 유다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주님의 종의 진면목을 갖춘
사랑 가득한 관상가 마리아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집 안 가득한 향유 냄새는
마리아의 주님 향한 사랑의 향기,
내면의 향기를 상징합니다.
 
주님께 사랑을 많이 받아
내적 힘이 충만한 관상가만이
이런 무사한 사랑, 계산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유다의 주님과의 관계는 얼마나 빈약한지요.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일견 합리적인 듯 보이지만
인정머리 없는 유다의 심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과 신뢰가 사라진 유다의 그 마음자리에는
차디 찬 이해관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당신의 종인 우리 모두를
당신의 영으로, 당신의 생명과 빛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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