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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2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3 조회수635 추천수5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최후와 관련하여 보여주었던 제자들의 모습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베드로 사도는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으며, 이에 반해 따르는 여인들은 십자가 아래서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으며 주간 첫 날 아침에도 예수님의 무덤이 걱정되어 찾아간 이는 여인들이었습니다. 각 복음서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의 수와 이름은 다르게 기록하고 있지만 마리아 막달레나가 맨 처음에 찾아간 사실에 대하여는 4복음서는 동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절대적인 남성우월주의 사회였기 때문에 여인들은 지금처럼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여인들이 예수님을 가장 큼직이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맨 처음 만난 사람은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한 마리아 막달레나였으며 부활하신 사실을 맨 처음 알린 사람도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이런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하여 여전히 천대하며 심지어는 창녀로 둔갑까지 시켰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 교회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지금의 현실이 그렇게 묵상하도록 하게끔 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로 둔갑된 계기는 지금 정확한 자료를 찾을 시간이 없어서 기억에만 의존하고 있지만, 어느 교황께서 막달레나를 창녀로 강론한 그 이후부터는 신학적인 검토 없이 교회 전통으로 창녀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로부터 천 몇 백 년이 지난 후에야 로마 교황청에서 잘못을 공식 인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자료는 묵상 후에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 의한 진실의 은폐와 여론조작이 오늘 묵상 소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로 천여 년 이상 허위사실에 의한 피해자가 된 것은 진실의 은폐라는 오늘 묵상과 일치를 이루고 있으므로 기막힌 일입니다. 아마 최초로 무덤에만 가지 않았더라도 이런 수난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막달레나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의 대책회의를 통하여 언제나 진실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무슨 사건만 떠지면 당국은 대책회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대책회의는 진실의 은폐, 왜곡의 작당회의라는 것을 오늘 복음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진실의 은폐, 왜곡의 작당회의에 맞서 싸우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활 첫 말씀이 “두려워하지 마라” 하신 것으로 묵상해 봅니다.

진실 은폐와 여론 조작에 맞서기 위해서는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 10, 26) 하신 말씀으로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은 마무리하겠습니다. 주간 첫 날을 시작하는 묵상이므로 제 자신을 차분히 가라 앉히려면 이 부분에 대한 묵상은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한 가지 추가한다면 오늘 복음 말씀인 “두려워하지 마라”하신 말씀이 위 인용구절에서도 똑같이 '두려워하지 마라'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고 알려라 하였습니다. 지금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이성을 잃고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에, 제자들이 호수에서 맞바람을 만나 시달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자 제자들은 유령으로 알고 소리쳤습니다. 그때에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태 14.27)하셨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으로 착각하였을 것입니다. 유령은 극도의 공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포의 상태에서도 우리는 진리이신 주님만을 믿고 꿋꿋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도식화된 묵상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묵상은 제가 하지 않더라도 넘치고 넘쳐 날 것입니다.

부활하셔서 첫 번째로 하신 이 말씀을 이렇게 단순하게만 묵상할 말씀이 아닌 듯합니다. 복음서에서 ‘두려워하지 마라.’ 이 말씀은 너희들이 앞으로 복음을 전파할 때에, 하느님 말씀의 진실을 알릴 때에 많은 박해를 받을 것이지만 그 박해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으로,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하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의 '두려워하지 마라' 하신 이 말씀은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장례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경비병들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으므로 사흘을 기다렸다가 시신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 날 것이다'(마태 27.63)는 말씀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예수님의 무덤을 군사들이 더 이상 경비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그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2)하신 말씀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예수님 당신의 장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복음서는 고도의 상징적인 기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거나 어느 한 단락의 말씀만을 가지고 그 말씀의 진의를 해석할 수 없도록,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복음 해석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부모님의 장례도 치루지 말고 당신을 따르라는 그런 의미로 해석한다면 이는 福音이 아니라 禍音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는 말씀은 내 장례는 잊고 빨리 갈릴래아로 가서 생업에 종사하며 복음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알아듣고 갈릴래아로 간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천년이 지난 저희도 예수님을 이렇게 뵙고 있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면 이는 더 이상한 얘기입니다. 제가 이렇게 매일 복음을 묵상하는 것도 예수님을 뵙고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하신 이 말씀은 복음을 내 생활 속에서, 내 삶 속에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갈릴래아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영원한 고향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여야만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고향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갈릴래아에서, 영원한 고향에서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것이 우리의 참 신앙이며 믿나이다! 믿나이다! 하는 신앙고백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비나이다!가 우리의 신앙이 아님을, 이제 우리 모두는 신앙고백의 상징적 의미를 이해하여 참된 신앙생활을 하여야 함을 묵상하였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당신의 장례는 당신에게 맡기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실천하라 하였음에도
이를 깨달지 못한 제자들을 위해서,
또 진실을 밝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저희들을 위해서
고향으로 가셔야 할 발길을 돌려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영원한 고향 갈릴래아에서 다시 만나시듯
저희들도 주님과 영원한 고향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지켜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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