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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4일 야곱의 우물- 요한 20, 11-18 묵상/ 귀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 그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4 조회수569 추천수7 반대(0) 신고
귀하게 내 이름을 불러준 그분

그때에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맡에, 다른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그들이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이는 ‘스승님!’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마리아 막달레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면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이 말씀을 전하였다.
(요한 20,11-­18)
 
 
 
 
◆나는 어릴 때부터 ‘옥자’라는 이름이 촌스러워 당당하게 이름을 얘기하지 못했다. 세례를 받은 후로는 아예 세례명으로 모든 소개를 대신했다. 그런데 부끄러움에서 벗어나게 해준 한 출발점이 생겨났다.

어느 해엔가 전례력으로 연말을 지내고 있어서 요한묵시록이 계속 이어지던 어느 날, 잘 아는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오늘 미사 때 경상도 수사님이 독서를 하는데, 유난히 ‘옥좌’라는 단어가 많이 나왔어요, 근데 이 수사님이 계속 ‘옥자’라고 읽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수녀님 이름이 떠오르면서, 아! 이 이름이 보통 이름이 아니구나. 묵시록은 수녀님을 위한 성경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장난기 어린 말을 들으면서 한바탕 크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새로운 깨달음 같은 뿌듯함이 생겨났다. 겉으로 표현되는 이름보다 그것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마음의 태도, 곧 관점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깨달음과 나의 촌스러운 이름을 웃지 않고 귀히 불러준 그들 덕분에 단지 이름만이 아닌 나의 인간적인 정체성에 대한 어떤 부분까지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름은 그 사람을 가장 짧은 단어로 표현한다. 이름을 귀하게 불러주는 사람은 그 존재를 귀하게 대해 줌으로써 그 안에 잠든 귀함을 인식하게 해준다. 오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불렀을 때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았던 그녀! 부활하신 그분의 모습을 눈으로는 알아뵙지 못했어도 자신의 귀함을 일깨워 준 그분의 음성이 얼마나 익숙하고 귀한 부름이었기에 단 한마디 ‘마리아야!’로 충분했을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숱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또 다른 이들에게 우리의 이름이 불려진다. 하지만 이렇게 내 존재의 귀함을 일깨워 준 그리고 다른 이의 귀함을 알게 해준 그런 이름을 불러주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양옥자 수녀(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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