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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구를 찾느냐?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4 조회수808 추천수4 반대(0) 신고
 

 

누구를 찾느냐? - 윤경재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그렇게 울면서 무덤 쪽으로 몸을 굽혀 들여다보니 하얀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뒤로 돌아선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예수님이신 줄은 몰랐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리아는 그분을 정원지기로 생각하고,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불렀다.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내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 하고 전하여라.” (요한 20,11-18)

 

  어제 밤에 주님 부활을 축하하는 성당 구역모임이 있었습니다. 여유가 있어서 조금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주인 가족에게 인사를 나누고 상을 펴 모임 준비하는 것을 돕다보니 거실 장식장에 놓인 사진들에 눈길이 쏠렸습니다. 아이들 어릴 적 사진인데 아주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사진 속 행복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집 주인께서 사진 찍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전문가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진 찍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친구 집에 방문하면 예전에 찍은 졸업식 사진이나 여행 기념사진을 보여주곤 합니다. 그럴 때 하나같이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사진을 보게 됩니다. 잘 찍은 사진보다 익살스런 모습을 하고 찍은 사진에 눈길이 더 갑니다.

  사진 찍을 때 무작정 초점만 맞추고 찍기 때문에 자연스런 모습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설명하십니다. 사진 찍기 제일 어려운 것이 어린아이 돌 기념사진이라고 합니다. 눈에 설은 사람과 낯선 환경에 놀라 아기가 좀처럼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아내기 어렵다고 합니다. 사진 찍기를 배우는 초보자 시절에는 구도라든가 빛의 각도를 생각해서 찍지만, 뛰어난 사진작가는 대상에서 목소리를 담아내는 실력이 남다르다고 합니다. 풍경사진보다 인물 사진 찍기가 더 어려운 것이 인물의 마음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인물 사진 찍을 때는 먼저 어떤 교류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대상이 마음을 열고 다가올 때 생생하고 좋은 장면이 담긴다는 것이죠. 대상과 작가 사이에 이해와 사랑이 소통할 때 영원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사진 찍을 때 가장 아름답고 자연스런 인물 사진을 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귀한 배움이었습니다.

  막달레나 마리아는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던 예수님을 뵈었으면서도 금세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앞을 가려 변화된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자기감정 안에 갇혀 외부에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누구를 찾느냐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어도 마리아는 예수님을 정원지기로 착각하고 엉뚱한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자기주장만 외칠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을 인식한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이름을 불러주실 때였습니다. “마리아야!”라는 음성에는 애틋한 사랑이 담겨있었습니다. 그 사랑을 떠올릴 순간 마리아는 영원히 살아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한 장의 사진이 시간을 초월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듯 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만질 수 있고 음식을 잡수실 수 있으셨지만, 생전 모습 그대로는 아니셨습니다. 마리아가 미처 깨닫지 못할 정도로 변모된 분이셨습니다. 마리아는 무덤에서 소생한 오빠 라자로를 금세 알아보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점은 같아도 소생과 부활이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생한 라자로는 결국 다시 죽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부활하신 분을 알아보려면 그냥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눈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사랑의 눈입니다. 새롭게 눈을 뜰 때라야 변모된 주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자기 곁에 와 계신 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떠나실 때 마지막 계명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지금 마리아에게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사랑의 눈을 새롭게 뜬 마리아는 여태껏 자기 곁에 서 계셨던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정원지기처럼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계셨지만 결국 한 분이셨습니다.

  마리아는 또 다른 체험을 합니다. 주님을 발견했으면 즉시 놓아드려야 한다는 체험입니다. 주님을 나의 소유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존재로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물 사진을 잘 찍었어도 사진 속 인물은 여전히 과거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사진은 내게 추억을 불러일으킬 뿐 현재를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마리아가 과거의 예수를 상상하고 자신에게 익숙한 예수님만을 고집했다면 새 보호자 성령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예수님 상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아니 왜곡된 신앙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내게 도움을 주셨던 분, 내가 필요했을 때 나타나시는 분으로만 찾는다면 우리 눈에 다시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누구를 찾아야 하는지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절실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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