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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5일 야곱의 우물- 루카 24,13-35 묵상/낯선 이 안에서 낯익은 분을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5 조회수549 추천수7 반대(0) 신고
낯선 이 안에서 낯익은 분을

[안식일 다음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주더랍니다.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루카 24,`13­35)
 
 
 
 
◆지난해 양로원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밤 10시가 넘어 신자 분한테서 전화가 왔다. 연세가 좀 드신 아주머니가 길에서 떨고 있는데 데려가도 되느냐고 했다. 형편이 그렇다면 오늘 밤만이라도 묵으시게 모셔오라고 했다. 옷을 켜켜이 껴입은 것으로 보아 노숙한 지 꽤 된 것 같았고, 말씀도 횡설수설했다. 거기다가 목욕을 시키는데, 등의 상처를 전기 테이프로 붙인 것을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과 함께 뉴스에서 들은 온갖 흉흉한 생각이 들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할머니들이 걱정되어 다시 일어나 칼 등 위험한 것들을 치웠다.

그러나 나의 소심한 염려와 달리 아주머니는 며칠을 잘 지내고 가셨다. 이 일로 인근의 신부님이나 신자들은 참빛이 되는 행동이라고 칭찬하셨지만, 내 마음은 초대보다는 의심과 경계로 가득 차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사실에 기인한 의심이나 경계가 아닌 내 마음의 두려움과 소심함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우리 삶 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참으로 큰 믿음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이건 단순히 공간적인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더한 어려움에 처했을지라도 도왔을 것이다. 비록 나도 겉으로는 그렇게 했지만 전혀 알지 못한다는 이유가 얼마나 높은 장벽으로 우리를 계속 타인으로 살게 하는지. 그런 자신이 부끄러웠다.

제자들이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초대하기까지의 여정이 어쩌면 우리가 낯선 이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해 가는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잠깐씩 단절과 통교라는 귀로에서 매번 선택을 하는 받아들임의 여정 안에서, 그들은 낯선 이 안에서 주님을 알아뵙기까지 이른다. 경계와 의심과 무관심이 당연시되는 삭막한 세상에서, 주님께서 낯선 이로 우리에게 말을 걸며 다가오실 때, 나는 과연 그분을 내 생애 몇 번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경직된 마음에 조금씩 틈을 내어 살아가는 용기를 청하며, 엠마오로 가는 길을 다시 나서봐야겠다.
양옥자 수녀(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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