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의 자연환경이 아름다워 나는 고향에서 휴가 보내기를 좋아한다. 아버지께서 느티나무 아래 지어놓으신 정자에서 바라보면 드넓은 초록 들판과 그 뒤로 맞닿은 뭉게뭉게 다정한 산들, 그사이로 하얀 두루미들이 날아다니는 광경은 한마디로 천국이 따로 없다.
어느 날 읍내 성당에서 저녁미사를 마치고 동생에게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나서니 밤 10시였다. 칠흑 같은 밤에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산길을 지나는데 근처에 인가도 없었다. 룸미러를 보면 뒷좌석에 누가 앉아 있을 것 같고, 당장이라도 앞에 뭐가 나타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두려움으로 차를 급하게 몰다가 하마터면 논두렁에 빠질 뻔했다.
다음날, 밤이나 낮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지난밤 내가 느낀 두려움은 무엇인지 의문이 생겼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없는 것처럼 착각한 데서 기인한 어리석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밤에 그곳을 지나갈 때 두려움이 생기려고 하면 상향등을 켜 어둠에 덮인 산과 들을 보았다. 분명히 그들은 아름답게 그 자리에 있고, 어둠이 잠시 가린 것뿐임을 확인하고 나니 두려움이 사라졌다.
두려움은 우리를 당황하게 하고, 사실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예수님의 죽음으로 절망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여유를 갖지 못한 것처럼. 잠시의 어둠에 가려 마음이 불안해지고 평화를 잃어버리거나 그 어둠이 전부인 양 착각할 때, 믿음의 전조등을 높이 켜보자. 아직 날이 새지 않아 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는 그 배려의 때, 희망의 때를 확신하며 갈 때 우리는 주님의 평화를 비는 인사 앞에 고개 끄덕이며 삶의 힘든 밤길을 기꺼이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양옥자 수녀(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전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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