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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9 조회수438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 - 윤경재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요한20,19-3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하신 일이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넣어 주신 일입니다. 창세기 2,7절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라는 말씀이 연상됩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명을 불어넣으셨듯이 예수님께서도 죄로 말미암아 다시금 먼지가 된 인간에게 성령의 숨을 불어넣으십니다. 인간을 새롭게 재창조를 하시고 계십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에덴 동산에 살게 하시되“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라고 명령하셨으나 사람은 그만 그 금령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지은 죄가 인간에게서 떠나지 않고 계속 주위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다시 오시어 그 죄를 용서하는 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 용서를 온 세상에 퍼트리도록 명령하십니다. 그 용서는 하느님만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으로 제자 된 사람은 용서를 받고 스스로 용서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용서를 거부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용서를 베풀고 싶어도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냥 자기의 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을 가능성을 유보하신 주 하느님처럼 예수께서도 사람이 용서의 성령을 거부할 가능성을 남겨두셨습니다. 이는 그만큼 사람을 믿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단죄하여 벌을 주시려고 틈을 엿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와 자유를 지니신 당신의 모상을 온전히 사람에게 부여하고 싶은 갈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자유와 창조성을 잃은 사람이란 아무 의미가 없으며 더는 당신의 모상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사람에게 자유와 창조성을 주시기 위해 주 하느님께서 스스로 자유를 제한하신 셈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도 스스로 자유를 올바로 사용해야 마땅합니다.

  제자들이 공동체로 모여 있는 가운데로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인사를 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평화는 ‘성령으로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제자들에게 불어넣어준 성령, 그것은 사랑이며 생명의 에너지입니다.

  평화는 ‘샬롬’으로 그 의미가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샬롬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머무름으로써 얻어지는 은총을 뜻합니다. 올바른 관계란 계약을 맺은 쌍방이 계약조건을 충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충실히 따를 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대로 자손을 별처럼 많게 하셨고 온 땅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샬롬은 영적인 풍요와 함께 실제적인 풍요도 가져옵니다. 물질적 부유와 삶의 행복을 주십니다. 개인에게는 명예와 번영과 행운을 가져옵니다. 전쟁에서는 승리도 주십니다. 사회 정의를 이룩해 주십니다.

  공동체에 잠시 벗어나 있던 토마스는 그만 의심이라는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공동체에 함께하지 못한 소외를 책임지기 싫어 의심으로 전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경험을 자주 합니다. 어떤 모임에 한두 번 빠지다 보면 나중에는 왠지 서먹해져 다시는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있지도 않은 갖가지 핑계를 댑니다. 그나마 남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토마스도 그랬습니다. 똑똑한 체 하였으나 실은 공동체에 함께하지 못한 불평을 전가하는 셈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시어 토마스의 의심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으십니다. 바로 지극한 용서의 행동입니다. 그 순간 토마스는 자기가 뱉은 말의 책임을 단단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라는 말씀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볼 생각을 단념하고 오로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주님의 용서를 체험한 효과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면 저절로 부활하신 분을 믿고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아니 예수님께“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는 누구나 용서받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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