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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9일 야곱의 우물- 요한 20,19-31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9 조회수588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0,19-­31)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모르는 제자들은 두려움과 실의에 빠져 어떤 집에 모여 문을 닫아걸고 있습니다(20,19). 요한은 그들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며 숨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고발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세력들이 언제 어느 때고 자신들도 잡아갈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따라왔던 스승의 맥없는 죽음에 대한 절망감과 그분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함께하지 못한 죄책감에 더하여 자신들의 미래에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자괴감과 울분이 만들어 낸 두려움도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위로와 평화를 얻기에 동료들의 체온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기에는 너무 지쳐 있습니다. 꽁꽁 얼어붙고 닫혀 있는 이들 앞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3-­5) 닫혀 있는 그들의 집과 마음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스승이 돌아오시리라는 기대는 손톱만큼도 하지 못한 그들이었습니다.

그들 쪽에서가 아니라 온전히 예수님 당신의 뜻에 의해 그 집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잃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평화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고통을 통해 얻으신 평화이며, 죽음을 통해 이루어 낸 평화입니다. 당신의 희생으로부터 온 평화입니다. “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셨지만,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되살아나셨습니다.”(로마 4,25) 예수님께서 평화의 인사를 하실 때, 거기에는 당신이 고통을 통해 성취한 화해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합니다(요한 20,20). 당신 죽음의 승리 표시인 상흔을 보여주자 비로소 제자들의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16,20) 그들은 이제 열린 눈으로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다시 평화를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21절)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을 보내시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다시 살게 하신 것처럼, 당신 제자들에게 그와 같은 권한과 사명을 부여하시어 사람들한테 파견하십니다. 이는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와 사명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22절) 우리를 살게 하시는 주님의 숨결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창세 2,`7) 예수님께서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주심으로써 제자들은 회의와 갈등과 두려움을 떨쳐냅니다. 이제 닫아건 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수행할 힘을 얻고, 스승이 걸어가신 것처럼 벗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버릴 준비를 합니다. 이들 제자들의 파견은 죄의 용서로 이어집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을 것이다.”(요한 20,23) ‘죄의 용서’는 삶을 정화시키고 새로운 출발을 가져오며, ‘나’를 해방시킵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토마스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24절).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고 말하자, 토마스는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25절) 하고 말합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심을 여러 가지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마태 28,17) 루카는 여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타난 제자들의 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루카 24,11) 아레오파고에서 한 바오로의 연설에서는 부활에 대한 이야기가 청중의 비판의 초점이 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사도 17,32)

요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제자 토마스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곧 다른 제자들의 이야기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위해서는 자신이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토마스에게는 자신의 경험에 의한 증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일주일 뒤에 다시 모여 있을 때 토마스도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뒤 처음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와 같은 일이 이번에도 일어납니다.
문이 닫혀 있는데도 예수님은 그 곳으로 들어오셔서 제자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하십니다(요한 20,26). 그리고 토마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27절) 예수님은 토마스가 원하는 경험에 의한 증거를 접할 기회를 제공하시면서도, 의심을 버리고 믿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은 만지거나 손을 넣어보는 일을 포기하게 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토마스의 반응은 다음과 같은 믿음의 고백으로 표현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28절) 그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최고의 호칭인 ‘하느님 그리고 주님’을 사용하여 자신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29절)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히브 11,1). 주님, 경험에 의한 증거를 필요로 하는 저희 모두에게 오늘 당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간구합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믿음으로 문을 열고 나가 당신께서 주신 평화를 전하고 싶습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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