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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 공동체" - 4.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19 조회수495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4.19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사도4,32-35 1요한5,1-6 요한20,19-31

                                                            
 
 
 
 
"하늘 공동체"
 


부활 2주일 새벽어둠을 가르며 힘차게 울려 퍼진
여기 수도자들의 초대 송 후렴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배 밭에 활짝 만개한 배꽃들 역시 주님 부활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아침 배 밭 선책 중 떠오른 글입니다.

“어, 하늘이 둘이네
  위로는 파란 하늘
  아래로는 하얀 하늘
  배꽃 활짝 핀 배 밭
  하늘이
  하얀 하늘이 되었네.”

하얀 하늘이 된 배 밭,
바로 하늘이 된 아름다운 공동체를 상징합니다.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참 좋은 축복의 선물이 이런 하늘같은 공동체입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매일미사를 통해
아름다운 하늘 공동체로 변모되어가는
우리들의 가정공동체, 교회공동체, 수도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 이런 아름다운 하늘 공동체입니다.

평화의 공동체가 하늘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 공동체에 주신 첫 선물이 평화입니다.
 
무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세 번이나 나옵니다.
유다인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는데도
주님은 들어오시어 한 가운데 서시며 평화를 선사하십니다.
 
이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일컬어 마스터키라 합니다.
모든 문을 열고 들어가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마스터키라기보다는
부활하신 주님 가시는 곳마다 벽이 문으로 바뀐다는 말이 맞습니다.
 
아무리 철옹성 같은 방도, 마음의 벽도
주님께서 오시면 활짝 열린 문이 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들어오시니
공포와 두려움의 어둠은 흔적 없이 사라져
방과 제자들의 마음은 평화와 기쁨의 빛으로 충만하지 않습니까?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공동체에 주시는 참 좋은 선물은
평화와 기쁨입니다.

세상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주님만이 주실 수 있는 참 평화와 기쁨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고통이나 시련도
이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이들을 다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웃에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 역시 주님의 평화요
주님은 이런 평화를 이웃들과 나누라 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역시
평화의 사도로 파견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생명의 공동체가 하늘 공동체입니다.

죽어있는 공동체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적 공동체가 우리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또한 부활하신 주님의 선물입니다.
 
끊임없이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 우리공동체입니다.
 
이래서 자주 미사 참여를 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은 그대로 미사장면과 흡사합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제자들뿐 아니라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성령을 통해 끊임없이 공동체를,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성령을 통해 용서와 치유, 창조행위를 계속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성령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끊임없이 형제들을 용서하게 합니다.
 
생명을 주는 성령,
진리이신 성령,
자유롭게 하는 성령께서 우리 공동체를 끊임없이 고양(업그레이드)시켜
하느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사랑의 공동체가 하늘 공동체입니다.

바로 오늘 2독서 사도행전이
사랑의 공동체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물론이요
수도공동체가 또 공동체 운동을 하는 모든 이들이 꿈꿨던
공동체의 원형인 유토피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요
바로 우리 요셉수도원이 목표로 하는 공동체입니다.

자유와 평등의 사랑의 공동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면 영원한 숙제이자 딜레마입니다.
 
자유를 살리다 보니
빈부의 격차가 심한 불평등의 자본주의 사회 공동체요,
평등을 살리다 보니
인간 자유가 강제되는 공산주의 사회 공동체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든 공산주의 사회든 하느님 없는 사회임은 똑 같습니다.
 
돈이 하느님이 되어가는 자본주의사회요,
하느님 없이 폭력으로 평등의 유토피아 사회를 꿈꾸는 공산주의 사회,
다 비현실적 환상의 사회입니다.
 
하느님의 성령에, 사랑에 감동되어
자발적 가난을, 자발적 나눔을 택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자유와 평등이 조화된
한 마음 한 뜻의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실현되는 이런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자녀인 공동체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묘사되는 사랑의 공동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

바로 이게 수도공동체의 이상입니다.
 
이런 공동체가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이들이 꿈꾸는 영원한 유토피아 공동체입니다.
 
예언자들은 물론 모든 혁명가들이 그렸던 이상적 공동체입니다.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받았다.”

자본주의사회든 공산주의사회든 그 어떤 혁명가이든
이런 부활하신 주님 없이 꿈꾸는 유토피아 공동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큰 은총을 누리며 자발적 자기포기와 나눔의 사랑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혁명은 외적변화의 혁명이기보다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내적변화의 혁명임을 깨닫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선사하시는 하늘 공동체입니다.

평화와 생명,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가 세상을 이기는 공동체입니다.
 
세상 안에 있되 세속화된 세상 같은 공동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세상을 이깁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
천하무적 세상을 이기는 하늘 공동체입니다.

어제 이집트의 수도자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새삼 깊이 묵상한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강과 샘입니다.
 
강을 끼고 문명이 발생했듯이
나일 강의 비옥한 땅 주변에 수도생활의 꽃폈다는 것이요,
또 사막의 수도원에는 샘이 필수였다는 것입니다.
 
즉시 연상된 게 강 같은, 샘 같은 부활하신 주님이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공동체를 적셔가며 가로질러 흘러가는 생명의 강이요,
공동체의 사막 한 가운데에서 생명수 샘솟는 우물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흐르는 미사의 강이요,
미사의 샘에서 샘솟는 평화와 생명, 사랑이
우리 모두를 촉촉히 적셔 끊임없이 하늘 공동체로 변모시켜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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