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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랍뿌니!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20 조회수927 추천수9 반대(0) 신고

 

 

 

부활 8일 축제 내 화요일 - 랍뿌니!

 

오늘 복음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로라면 첫 번째 예수님의 발현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빈 무덤을 보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 마리아 막달라는 계속 남아 울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신학교 때 유학을 나오고 나서 제가 보고 싶을 때는 가끔 인천 공항을 왔다 갔다 하셨다고 합니다. 공항에 간다고 해서 제가 오는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떠난 자리에 다시 한 번 오고 싶은 것은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리아 막달레나도 예수님께서 마지막까지 계셨던 무덤을 떠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덤 안을 들여다봅니다. 무덤 안엔 천사 두 명이 앉아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머리를 두었던 곳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발쪽에 앉아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그들이 누구인지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그런데 왜 천사들이 예수님의 머리맡과 다리 쪽에 앉아있었을까요? 여러분은 구약에서 무엇이 연상됩니까? 혹 야곱의 사다리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야곱이 잠을 자는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다리를 봅니다. 그 사다리로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바로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해 갈라졌던 하늘과 땅을 이어주시는 야곱의 사다리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체, 즉 땅을 취하심으로써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주시는 하느님이시오 사람이신 중재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 분을 통해 하늘과 땅이 연결되고 천사들도 그 분을 통해 오르락내리락 하니 그 분은 진정 하늘의 문인 것입니다. 그 분은 당신을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늘나라로 들어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의 4대 성당에 있는 성문들은 바로 그런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빈 무덤이 바로 야곱의 사다리입니다. 빈 무덤은 부활의 증거는 아닙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빈 무덤은 성경입니다. 누구나 성경을 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파고드는 사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그 안에서 만납니다.

마찬가지로 끝까지 무덤을 지키고 있는 마리아에게 천사들은 참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줍니다.

 

여러분은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빈 무덤을 보고도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린 제자들과 같습니다. 결국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아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 “우리가 안 지 얼마나 됐지?”하는 말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된지 얼마나 됐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안다’는 의미는 ‘사랑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알기 시작한 것은 사랑하기 시작한 때부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안다는 뜻은 참으로 사랑한다는 뜻이기에 예수님을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려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야!’하시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닙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마리아!’라고 부르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예수님은 성모님의 어머니까지도 ‘여인’이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마리아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은 ‘신랑’으로서 ‘신부’를 부르는 것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고 합니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안다는 것은 완전하게 안다는 뜻이고 완전하게 안다는 것은 완전하게 사랑한다는 뜻이고 완전한 사랑은 바로 신랑으로서 신부를 사랑하는 것이 그 절정입니다.

요한은 의도적으로 에덴동산과 아가서에 나오는 ‘동산’이란 단어를 씀으로써 우리의 신랑이요 아담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이며 하와를 하늘나라에서 만나는 것으로 형상화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교회의 상징인 마리아는 예수님의 이름 대신 ‘랍뿌니’, 즉 ‘스승님’이라 부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이름을 정확하게 아시지만 인간은 이 지상에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끊임없이 그 분을 알아가기 위해 노력 할 뿐입니다. 즉, 우리의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랍뿌니’인 것입니다. 그분을 알아가는 노력이 바로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삼고 그 분께 배우려고 하는 이는 그 분을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다는 뜻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분을 알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생각해 봅시다.

하루에 5분씩만이라도 성경을 읽으면 천천히 읽어도 5년이면 신구약 한 번 완독 할 수 있음에도 평생 단 한 번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마지막 날에 그 분 앞에서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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