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처럼 깔깔거리며 살고 싶어도 잘 되지 않을 때 「몸에 밴 어린 시절」이란 책을 만났다. 먼저 어린 시절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든 모르든 간에 내 삶에 대한 전 조건을 주님께 열어 보이며 비추어 주시기를 간구했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눈이 열리고 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죄상이 드러날까 봐 전전긍긍하고 사는 초라한 나를 발견한 후 나는 내가 불쌍해졌다. “너와 내가 거들어 아들을 잘 키워 보자.”던 어머니에게 딸이란 존재로도 인정받기 위해 가식적 사랑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분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통해 깊이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시고 나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허물고 재건축해 주셨다. 새집을 짓는 동안 참 많이 울었지만, 은총이 곳곳에서 손길을 뻗치는 기적의 연속이었다. 나는 고맙고 감사해서 진리를 따라 살기를 약속하고 빛 가운데 섰으며 그분은 나를 당신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를 알아가는 능력이 커질수록 반대로 나를 감추려는 능력도 따라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치 있는 일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변명이 길어지고, 빛에서 멀리 서려 할 때는 내 죄상이 드러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의지만으로 나서기에는 부족한 발걸음이 주님의 은총 안에서 빛으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오정순(한국가톨릭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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