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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26일 야곱의 우물- 루카 24,35-48/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26 조회수387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 무렵 예수님의 제자들은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다.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루카 24,35-­48)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함께하시다 갑자기 사라지셨던 예수님(루카 24,`31)은 이제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는 곳에 갑자기 나타나십니다.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36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더 이상 이 땅을 걸으셨던 예수님, 성금요일의 예수님과는 다릅니다. 이는 인간적 이해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 형태입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한 제자와 동료들에게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지만”(35절) 정녕 예수님께서 자기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그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37절).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그분을 몸이 없는 유령으로 또는 그들 자신의 공상의 산물이나 악마의 환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의혹이 이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가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38­-39절) 그들이 본 것은 공상이 아니었고 단순한 환시도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이 본 것은 예수님 자신,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손과 발이 이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기뻐하면서도 제자들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아 어리둥절해 있습니다(41절).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진실이라 하기에는 너무 기쁜 소식이었나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것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간적인 상식을 뛰어넘는 사건을 소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41절) 그러고는 제자들이 드린 생선을 그들 앞에서 잡수십니다(43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편에 다시 서십니다. 그리고 음식을 드시며 인간들 가운데 하나가 되십니다. 이때, 그들 앞에 부활은 현실입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인간들처럼 먹을 음식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 유한한 존재를 상징하는 한 요소를 이용하여 당신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모습과 방법으로 당신을 보여주신 것이지요.

이제 예수님께서 그들을 떠나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루카 17,22) 예수님께서는 당신 공생활 시작 무렵에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하늘 아버지에게 올라가시기 전에는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4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을 비롯한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예언의 실현이시며(4,21), 율법을 충만히 완성시키는 분이십니다(마태 5,17-­18).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성경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메시아에 관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루카 18,31-­32).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성경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그때까지 보이지 않던 참뜻을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부활에 비추어 구약성경을 이해할 때, 예수님이 이스라엘과 세상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46-­47절) 성경은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선포하고, 그 구원이 주님의 이름 위에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 온 세상의 구원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6; 이사 40,5)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에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루카 2,32; 이사 42,6)이라고 노래한 시메온의 찬가에서, 그리고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루카 13,29; 이사 49,12)라는 예수님의 설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구원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성조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세대가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12,2­3) 그리고 구원은 회개와 죄의 용서를 수반합니다. 회개는 죄를 용서받기 위한 조건이며 그로부터 생명이 옵니다.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관자”(사도 3,15)이지만, 회개와 용서의 주관자이시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사도 5,31) 모든 민족들의 구원과 선포에 관한 구약의 예언이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48) 제자들은 예언의 말씀이 실현된 사건, 곧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저희가 이해할 수 있는 모습과 방법으로 당신을 보여주시는 주님! 당신의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는 저희가 되겠습니다.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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