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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소공동체와 선교..................차동엽 신부님
작성자이은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9-04-29 조회수974 추천수4 반대(0) 신고

 

 

 

 

 

소공동체와 선교..............차동엽 신부님   

1. 선교의 원리

 

1) 선교의 동기

“선교를 해도 잘 안 된다”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목자들도 곧잘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있고,

신자들도 자주 이런 체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선교가 잘 되는 본당들이 있습니다. 이런 본당들의 선교사례를 분석해보면 그 비결이 있다. 분명히 선교를 성공적으로 보장해주는 인자(factor)들이 있다.

 

그가운데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 “나도 선교를 해야 하겠다”는 내적 동기이다.

좋은 영화나 맛있는 음식에 대한 홍보는 입소문으로 이루어진다. 베스트셀러의 감동 역시 입에서 입으로 퍼진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이웃에게 말해 주고 싶은” 내적 동기인 것이다.

선교에있어서도 만찬가지이다. 전하고 싶은 ‘내적 동기’(motivation)가 생기면,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전하게 되어 있다. 선교가 잘 되는 본당들을 보면, 대체로 이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다.

그런데, 강론과 교육을 통해 주어지는 외부(外部)로부터의 동기부여는 “나도 선교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신자 스스로가 선교를 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내부(內部)로부터의 동기부여는 “나도 선교를 하고 싶다”는 열정(passion)을 자아낸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복음 선포를 금하는 예루살렘 산헤드린(최고 의회)의 박해 앞에서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라며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을 전했다. 이것이 선교의 원리이다.

‘본 것’ 곧 체험한 것과 ‘들은 것’ 곧 배운 것을 제대로 확인하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동기가 절로 생겨난다는 것이다.  

선교는자신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 것’ 곧 체험한 복음을 확인하고서 “나는 보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에 앞서서 자신의 내면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은 정서적인 동기를 발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기쁜 소식’ 곧 복음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 태초에 원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인간 본래의 존재 의미를 회복시키기 위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저 주신 선물이 바로 ‘기쁜 소식’인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이 인류를 내부에서부터 변혁시켜 새롭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바로 이 변화의 체험, 우리 민족의 속어를 빌리자면 ‘팔자가 바뀌는’ 체험을 증언하는 것이 선교의 핵심에 속한다.

증언하려면 먼저 체험을 확인하고 시인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해야할 체험은 ‘복음 체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신이 복음이었으며 복음 선포자이셨다.

실제로,예수님을 만난 ‘가난한 사람들’은 ‘기쁜 소식’을 들었다. ‘눈 먼’이들은 보게 되었고, ‘억압받은 이들’은 해방되었다.

‘절름발이’가 걷게 되었고, ‘나병 환자’가 멀쩡히 치유되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팔자’가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이런 복음 체험을 전하는 것이 선교다. 선교는 단순히 “예수는 그리스도다”라며 교리(敎理)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 인생에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체험했습니다.

예수가 구원자(=해결사, 답)입니다”라며 체험을 증언하는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은총의 종류는 다양하다.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서 체험한 은총 곧 기쁜 소식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내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다:  

자신이고통이나 어려움 중에 있을 때 기도를 하여 응답을 받은 체험이 있을 것이다. 각자의 사연과 체험이 있을 것이다.

누구에게고 신앙인이라면 꼭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추억 속에서 더듬어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 안에서 평화를 찾았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주시는 평화는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누릴 수 있는 세상의 평화와는 다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신뢰하면, 문제의 한 복판에서도, 고통의 절정에서도, 마음에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화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건강(치유)을 얻었습니다.”고 고백할 수도 있다:  

통계적으로비신앙인보다 신앙인이 더 건강하고, 신앙인 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인이 가장 장수를 누린다고 한다.

이는 평균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이 사람을 낙천적으로 만들어 건강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숱한 사람들이 기도를 통하여 질병이 치유되고 건강을 회복하는 체험을 하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을 누립니다”라고 고백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인간의 본성을 꿰뚫어 알고 계시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비결도 알고 계셨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얻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도 있다:  

복음말씀은 단지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악령이 추방되었고,  

말씀 한 마디로 사람들이 치유되었다. 누구든지 복음을 자신의 마음에 받아들인 만큼 이 능력을 체험한다.  

이 능력을 통하여 자신이 목표로 하는 것을 이루게 되고 성공(成功)의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누리는 복음의 체험은 수 없이 많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죄(罪)에서 의(義)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불행에서 행복으로 옮겨 주시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은총체험을 제대로 하면 사명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일단, ‘보고’, ‘들으면’, ‘말하지 않을 수’(사도 4,20) 없게 되는 것이다.  

 

 

2) 선교의 열정  

 

 

내가 먼저 복음을 듣고 은총을 누리고 나면, 거기서 저절로 ‘열정’이 생겨난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이웃에게 그곳을 알려주고 싶고, 누군가와 나눈 좋은 대화를 어서 빨리 친구에게 전하고 싶다.  

좋은 것은 전해야 한다. 좋은 것은 나눠야한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야고 4,17). 

기회가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기에 사도 바오로는 이런 내적 충동을 거스르는 것은 자신에게 차라리 화(禍)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코린 9,16). 

율법의파수꾼이었던 사도 바오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게 된 것은 크나큰 은총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사도 바오로는 누구보다도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내적 동기를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복음의 체험은 내적으로 나눔을 충동한다. 좋은 것을 나누는 것은 의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의무는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다.  

이 의무는 내부에서부터 그 은총이 차고 넘쳐서 밖으로 표출되기에 막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단적으로 드러낸 사도들이 제가 앞에서 언급했던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그들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말라고 명하는 유다 최고 의회 ‘산헤드린’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보고 들은’ 은총이 안에서 밖으로 밀쳐 나와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웃이 처해있는 불행을 파악하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도 이전에 처해 있었던

죄와 죽음의 처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숱한 사람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이 들게 된다. 이것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내 모는 것이다.

 

물에빠진 사람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어떤 구조행위를 하도록 자연스런 충동이 일어난다.  

이는 사랑의 본능적인 발로다. 생명을 구해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꼭 이와 같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죄와 죽음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에게 구원의 밧줄을 던져주는 행위와 같은 것이다.  

결국,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송장과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애타는 연민(compassion)이

우리 가슴을 메우게 되면, 우리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충동에 굴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사람들이 듣든지 안 듣든지,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전함으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최대의 사랑을 베푸는 행위인 것이다.

바로 이 사랑이 우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내적 동기인 것이다.  

그리고 보고 들은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거저 베푸신 구원의 은총과 복음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랑이 복음을 전하도록 우리를 종용하는 것이다. 

 

 

하느님을향한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하고자하는 열정(passion)을 품는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죄인의 회개인 것이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 15,7). 

한사람의 생명은 이 세상과 바꿀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한 영혼의 구원을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영혼이 하느님의 사랑과 복음의 원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나아올 때에, 천국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하느님께서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처럼 기뻐하시는 것이다. 

결국,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고 싶은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게 될 때, 우리는 하느님의 기쁨에 동참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그러자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 25,21).

 

 

 

4) 선교의 사명  

 

 

예수님께서는이 선교의 사명을 사도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9.20).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이 사명을 절절하게 깨닫고 있었다. 이승훈이 가지고 온 한역 교리서를 읽은 이벽은 정약전 약종 약용 형제들을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참으로 훌륭한 도리이고 참된 길이요l 위대하신 천주께서는 우리나라의 무수한 불쌍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가 그들에게 구속의 은혜에 참여케 하기를 원함이요.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오. 우리는 천주의 부르심에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없소. 천주교를 전파하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오”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집11'선교, 17쪽). 

이벽의 이 사명의식은 초기 한국 교회 창설자들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5) 선교의 축복

 

하느님은 선교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주신다. 선교를 잘 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하는 사람은 어떤 축복을 받을까?  

 

첫째,기도가 더욱 힘을 받는다.  

선교는우리가 원하기에 먼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선교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채워주신다. 그리하여 선교자는 믿음의 능력과 기도의 효과가 더욱 굳세어진다.  

교회와공동체를 위하여 주신 이러한 은사는 결국 선교자 자신의 영성생활에도 크게 유익을 끼치게 된다. 선교자는 바로 그 믿음의 은사로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자신 있게 가정과 개인의 일을 낙관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하느님께서는 선교를 하려고 하는 자들을 찾아서 은총을 주어 사용하신다.  

선교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영육 간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는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를 빈손으로 빈 마음으로 내보내시지 않는다. 선교자에게하느님께서는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을 은사로 주시어 복음전파는 물론 부딪치는 모는 문제의 해결에 각별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우신다. 

 

 

둘째, 현세에서 축복을 누린다.  

선교는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 구하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약속해 주셨다. 

“너희는‘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이렇듯이열심한 사람에게 하느님께서는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책임져 주신다. 책임져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희생한 것의 ‘백배’의 보상(마르 10,30참조)을 주신다고 예수님께서는 약속해 주셨다.

   

셋째, 천국에서 받을 상급이 크다.  

제자들이선교의 풍성한 성과를 보고하였을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루가 10,20). 

이처럼선교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이미 하늘의 시민으로 등록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또한선교를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천국의 상급이 마련되어 있다.  

“사람들이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11-12).  

이땅에서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삶을 살았으므로 천국의 상급이 클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상은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고, 어떤 가치로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다.

 

선교는믿음의 씨앗을 심는 행위이다. 선교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과 물질이 필요하다. 또한 선교하는 가운데 멸시와 조롱과 심지어 핍박까지 받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인내하며 쏟아 부은 투자가 마침내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엄청난 결실을 가져다 줄 것이다.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풍요를, 사랑으로 심으면 사랑의 기쁨을, 멸시와 핍박을 참으며 심으면 영원한 위로의 평화를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선교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상급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더 큰 행복을 위해서 복음은 어떤 희생과 고생을 치르면서도 선포해야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그대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 내며, 복음 선포자의 일을 하고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2티모 4,5).  

 

 

 

 

2. 선교를 위한 소공동체의 역할  

 

 

복음선포는 소공동체의 핵심이다. 소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력으로 충만할 때 선교의 열매가 튼튼히 열린다.  

그리고 신자들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고 서로 섬기고 신앙을 나누며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삶 안에서 이루신 축복의 증인이 될 때 비신자들을 끌어당기는 자석이 된다. 이 작은 그리스도교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고통이 있을 때 왜 그렇게 기뻐하는지 

알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 소공동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1) 은총을 나누는 소공동체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함께 있을 때 그분도 함께 계신다.  

“단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18,20).  

예수님께서는단 두세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소공동체 안에 한 사람이라도 말씀에 눈을 뜨고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들었다면 이미 구성원들에게 나누어질 은총은 충분하다.  

소공동체에서는 하느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함께 신앙을 나누고 기도로 채우면서 버려진 돌처럼 쓸모없었던 사람들의 뜨거운 은총을 나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믿음이 강한 사람들을 통해 믿음이 자라게 되며 참석자 모두에게 필요한 은총이 충분히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공동체에서 어떤 구체적인 기도를 드린 뒤 하느님의 응답을 경험하는 일은 감격스럽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고 구성원들은 서로 더욱 가까워진다. 성령의 은사는 각자 안에서 다르게 나타나면서 서로 합심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소공동체 안에 살아계신 분은 성령이시다.  

 

 

2)진리를 나누는 소공동체

 

예수님의 제자로서 구성원들은 말씀을 통해 진리 안에서 자라도록 서로를 돕는다. 소공동체 안에서 각자는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자기 내면 깊은 곳의 상태를 살피고 하느님의 진리 안에서 행동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말씀을 접할 때는 심오한 일이 일어난다. 하느님과 만나게 되고 그분이 인간을 보시는 시각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과 마음속에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이해하게 된다.  

 

 

3)사명을 나누는 소공동체

 

소공동체는 하느님이 불러낸 하느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다. 

“여러분은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각처에 있는 모든 성도들과 함께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고린 1,2). 소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나누고 생각을 토론하는 차원을 넘어서 성숙한 신자, 능력 있는 신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너희는세상의 빛이다”(마태5,14) 

“너희는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이사명은 구체적으로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을 말한다.

 

혼자서는책임을 다할 수 없는 이 일은 소공동체 안에서 성령의 능력과 구성원들의 노력 두 가지가 결합될 때 비로소 일원들의 연대를 통해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소공동체는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고 하느님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작은 단위로서 절대적인 위치에 있다. 

 

 

 

 .

 

 

獨 신부들, 한국가톨릭 배우러 온다...

연합뉴스 | 입력 2009.04.12 10:02

 

(서울=연합뉴스) 양태삼 기자 = 신자와 사제가 모두 감소하는 독일의 가톨릭계가 우리나라 가톨릭 성장의 비결이 '공동체' 모임에 있다고 보고 11명의 신부를 보내 공동체 배우기에 나선다.


11일 천주교 주교회의에 따르면 독일 밤베르그 대교구의 루드비히 쉬크 대주교를 비롯한 11명의 독일 신부가 14일부터 8박9일 일정으로 방한해 공동체 모임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공동체 모임 활동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들은 한국 천주교회가 수년 전부터 강조해온 공동체 모임이 가톨릭의 성장 비결이라고 보고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를 통해 방한 의사를 밝혀와 방문이 성사됐다고 주교회의 관계자는 전했다.

공동체 모임은 지역이나 연령, 직업별로 신자들이 10-20명씩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는 것으로 사제가 있어야만 봉헌할 수 있는 미사와 달리 사제가 없어도 모임이 가능해 신앙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교회의는 설명했다.

이들은 한국에 도착한 직후 경기 수원교구를 방문, 세미나를 하고 16일 공동체 모임이 활성화된 제주교구를 방문해 제주본당의 다양한 공동체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들은 또 함께 입국하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신부 10명과의 교류를 통해 아시아 지역의 가톨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계획이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신자와 사제가 모자라 여러 본당을 합쳐 사제 1명이 이끌어가는 '지역 사목'을 펼치는 등 가톨릭 교세가 위축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활발한 공동체 모임이 독일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줄 것으로 독일 신부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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