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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3일 야곱의 우물- 요한 10,11-18/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03 조회수476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가고 양 떼를 흩어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
(요한 10,11-­18)
 
 
 
 
‘목자와 양의 비유’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비유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동물이 있다면 그중 하나가 ‘양’일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우리를 양으로 표현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양의 특징 때문일 것입니다. 양은 온순하고 순종적이며 어리석고 약한 동물입니다. 양은 시력이 나빠 몇 미터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혼자서는 아무 데도 갈 수 없습니다.
어디에 물이 있고 어디에 풀밭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양은 방어 능력이 없어 다른 동물들의 공격을 받으면 억울하게 물어뜯기고 잡아 먹힌다고 합니다. 고양이나 개는 혼자 살 수 있지만 양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양의 생명은 전적으로 목자에게 달렸기에 만일 양이 산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면 목자 없는 양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양에겐 반드시 목자가 필요하기에 양은 목자를 의존하고 목자는 양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관계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가 바로 주님과 우리의 관계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기르고 인도하는 착한 목자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르는 양입니다. 착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는 양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놓느냐 내놓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착한 목자는 양이 자기의 소유이므로 그 어떤 위험에 처하더라도 양들을 위해 목숨 내놓고 양을 지킵니다. 그러나 삯꾼은 목자도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요한 10,11-­13 참조)
양들에겐 삯꾼과 달리 착한 목자가 있기에 먹을 것, 마실 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적들과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만일 양들이 그런 일로 걱정한다면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양들은 철저하게 목자가 제공하는 환경에서 먹고 즐기며 젖을 만들고 털을 내주고 죽어서 고기를 남기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무리 걱정하고 노력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은 물론이고 죽고 사는 문제도 우리 의지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원 문제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중대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목자 없는 양”(마르 6,34)과 같다고 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을 보장해 주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보통 양치기를 하는 목자들은 최선을 다해 양을 지키고 돌보는 일은 하지만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람들’인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라고 말씀하셨는데, 또다시 ‘나는 착한 목자’라는 것을 강조하시며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10,14-­15)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의 소리만 들어도 알고, 멀리서 양의 모습만 보아도 자기 양을 구별합니다. 목자는 양의 체질이나 습관이 어떤지 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체험적인 앎입니다. 목자가 양을 아는 것처럼 양도 체험적으로 목자를 알아봅니다. 양은 목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에, 특히 자기 목자의 음성을 기억하고 분간한다고 합니다. “뇌는 소리를 들으면 ‘청각 지도’를 만들어 냄으로써 아무리 많은 소음도 속여서 듣고 싶은 소리의 방향과 내용을 감지해 냅니다.”(경희대병원 이비인후과 심주섭 교수) 이처럼 밤중에 사람이 다가오면 그가 자기 목자인지 아닌지 눈으로 분간할 수는 없지만, 목자의 음성을 듣고 금방 알아챕니다. 자기 목자 음성 외에 짐승의 아름다운 소리나 낯선 사람의 소리까지 구별합니다. 자기 목자의 휘파람과 말소리를 그대로 알아듣고 따라옵니다. 양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자기 목자가 누구인지 목소리를 통해 알게 됩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체험적으로 알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지식으로 알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알고 체험적으로 압니다. 욥은 “당신에 대하여 귀로만 들어 왔던 이 몸,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뵈었습니다.”(욥기 42,5)라고 귀로만 들었던 하느님을 체험으로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은 귀로만 들었던 하느님을 체험으로 알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양인 우리를 마음으로 알고 삶을 통해서 압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내밀하게 나를 아신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면, 다시 말해 내가 그분께 그렇게 내밀하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비로소 우리 역시 그분을 참으로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우리의 인도자가 되시어 평화와 안식을 주시는 분, 삶의 모든 복을 가져다주며 우리를 돌보는 목자이심을 압니다. 목자는 양떼를 돌보는 일을 아버지 하느님한테서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양들을 위해서 끝까지 돌보는 일을 감당하십니다.

우리는 양처럼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부족한 것투성이지만 실망하지 않고 예수님께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내 약점으로 인해 종종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 같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는 목자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착한 목자의 마음을 아는 다윗은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시편 23,1­3)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에 주님과 함께 있으면 부족함이나 결핍이 없다고 만족한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 놀랍고 엄청난 사랑의 은혜를 바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참사랑의 목자가 되신 예수님을 우리는 세세무궁토록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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