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도원에 입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는 하느님을 믿지 않으셨고 집안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는데, 장남인 제가 수도원에 입회한다는 것은 아버지께 얼마나 큰 짐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고, 비록 입회를 기꺼워하지 않으셨지만 막지도 않으셨습니다. 저도 어려운 집안을 내버려 두고 떠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는데, 여하튼 하느님의 은총으로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막내 동생이 군에서 휴가를 얻어 집으로 내려가기 전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동생과 함께 식사하고 보낼 때가 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도 형인데 찾아온 동생에게 하다못해 차비라도 주고 싶었지만 전 가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 마음이 무척 아팠고 몹시 미안했습니다. 수도 서원을 한 수사님들은 쥐꼬리만 해도 용돈이란 것이 있었지만 수도회에 막 입회한 지원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경비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식탁을 정리하는데 한 수사님이 제 곁에 남아 계시더니 저에게 조용히 다가오셔서 동생에게 주라며 제 손에 몇만 원을 쥐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저는 그 수사님에게 정말 감사했고, 제 마음을 읽으시는 주님을 느끼며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그 수사님은 그 일에 대해 기억을 못할 수 있지만 제게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때의 감동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그 수사님의 사랑의 열매는 제 마음에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사랑에 빚졌고 그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다행히 제 주위에는 예수님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고마운 사랑의 스승들이 있어서 한 걸음씩 사랑의 길을 배워 가고 있습니다. 오늘 스승의 날, 스승이신 예수님과 그분을 닮은 또 다른 스승을 많이 만나고 저도 그 무리에 속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태훈 신부(성바오로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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