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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5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7 조회수386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제 6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12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16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17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14일 복음과 동일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요즘 계속하여 예수님의 유언을 듣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평소 가르침은 잊고 살더라도 유언만큼은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은 자식 된 도리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은 다 잊더라도 오직 "서로 사랑하여라."하신 유언만큼은, 오직 하나뿐인 계명인 이 말씀만은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는 말씀은 없지만 시간이 있으면 틈틈이 숙독하는 章은 산상설교(마태 5-7)와 오늘 말씀이 포함된 최후의 만찬에서 들려주신 말씀(요한 14-17)입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에 해당하므로 더 숙연한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와 입장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마태 5,46-47)하셨습니다. 그러나 세리만치도 못한 제게는 이런 비유도 과분하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서로 사랑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기 위해서 하느님은 저희 모두에게 각기 다른 개성을 주셨습니다. 이런 하느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하신 말씀처럼 저희는 여전히 종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는 종들은 서로가 ‘내가 옳다, 내가 참이다’며 싸움질만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이런 무지한 종살이에서 벗어나려면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이 말씀을 지키는 도리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랑해야 하는지를 또 알아야 합니다. 사랑이 목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사랑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저희에게 남기고 가신 것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요한 14.27)고 말씀하셨듯이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단순한 사실마저 망각하고 있습니다.

남, 북한이 갈수록 긴장관계가 고조되어 가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쟁이 없는 평화상태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평화 상태를 지속하는 방법은 남, 북한이 서로 사랑하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으며 다른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요즘 우리에게 계속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보다는 대결구도로 가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어떤 대가를 치룰지 늘 조마조마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길만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한없이 낮아져야 합니다. 우리가 낮아지지 않고서는 사랑을 베풀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어제도 제 눈으로 확인하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여 누가 먹여줘야 식사를 할 수 있는 아버님과 어머님들에게 무릎을 꿇을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시며 밥을 먹여주시는 그분을 보며 저렇게 낮아져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왔습니다. 도대체 성변화가 무엇입니까? 성변화를 해서 뭘 하자는 것입니까? 성변화는 우리가 한없이 낮아져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성변화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은 자식 복은 없어도 이토록 많은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사시므로 부모덕은 참 많으십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자신의 몸까지 저희들에게 나눠주시며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사랑만이 평화를 이루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을,
그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 땅의 지도자들이 잊지 않도록
평화의 성령께서 이 땅의 지도자들과 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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