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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1일 야곱의 우물- 요한 15,9-17/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7 조회수425 추천수3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9-­17)
 
 
 
 
오늘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사랑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랑이 없는 가정·교회·사회·나라는 분열되고 맙니다. 사랑의 시작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1요한 4,7) 사랑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이자 표지입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인생을 돌아볼 때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사랑하지 않은 것이고 가장 의미 있고 행복했던 것은 사랑한 일이고 앞으로 남은 것은 사랑하는 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듣고 싶어합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이 음식을 먹지 못하면 몸이 괴로운 것처럼 영혼도 사랑을 받지 못하면 고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건강합니다.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올바른 사랑을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받을 줄도 알고 줄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라고 했듯이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사랑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당신 모상으로 빚어 만드신 것은 사람을 사랑할 대상, 사랑받을 대상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부족함이 없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당신의 속성인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강제적인 사랑이나 어쩔 수 없는 사랑, 비인격적인 사랑, 마음이 없는 사랑을 원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없는 사랑은 아무리 받아도 사랑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고, 어떤 조건 때문에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받아도 가슴속에 빈 자리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요한 15,9)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사랑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먼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시고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고, 아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그냥 알게 하신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을 모르고 세상과 더불어 죄를 먹고 마시며 살던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인도에서 빈민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마더 데레사는(1910­-1997) 1979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 영국의 한 방송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일생 동안 살아왔는데,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데레사 수녀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보살펴 주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 있는 몇 시간만이라도 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것, 이것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17)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셨고 하느님이 예수님을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느님한테서 사랑이 흘러나와 예수님을 거쳐 우리에게 왔습니다. 이 사랑은 다시 우리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거저 받았습니다. 거저 받았기에 거저 주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와 예수님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이며, 이 관계에서 맺어지는 열매 또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5,12)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15,10 참조) 선택사항이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달려 있는 가지가 되려면 하느님의 속성인 사랑으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물과 기름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사랑이신데 내가 미움의 삶을 살아간다면 당연히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없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달려 있는 가지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인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려면 나 역시 사랑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1코린 13,3.7-­8)라고 사랑의 찬가를 노래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어야 할 열매는 바로 사랑이고, 우리가 청해야 할 것 역시 사랑입니다. 사랑은 인생의 어려운 방정식을 푸는 열쇠와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하느님의 사람이 되면 필연적으로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할 때 하느님과 가장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느님께 은혜를 청합시다.
정애경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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