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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은 우리의 친구" - 5.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17 조회수426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5.17 부활 제6주일                                
사도10,25-26.34-35.44-48 1요한4,7-10 요한15,9-17

                                                        
 
 
 
 
"주님은 우리의 친구"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눈부신 신록의 5월,
온 누리 가득한 하느님의 영광이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주차장 가득한 이팝나무 하얀 꽃들,
잘 가꿔진 밭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온갖 채소들,
꽃들 지자 열매 맺기 시작한 배나무들,
온통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자연입니다.
 
하늘 비 내린 후 죽었던 시내도 살아 나
맑은 시냇물 노래하며 흐르는 시내가 되었습니다.
 
하늘 비 내려야 노래하며 흐르는 맑은 시냇물이듯,
하늘 은총 있어야 노래하며 흐르는 마음의 맑은 사랑의 시냇물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마음에는 맑은 사랑의 시냇물이 흐르고 있습니까?
사랑의 물 말라 버린 메마른 마음의 시내는 아닙니까?

배 밭을 거닐면서 예전에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농사의 80%는 하느님 농부께서 하시고
배 열매 영양분의 80%는 배나무 잎들을 통해
하늘의 태양으로부터 얻는 다는 것입니다.
 
또 배 열매 하나를 키우기 위해
배나무 잎 80장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배 열매들, 그대로 하늘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이런 하늘 사랑, 하느님 사랑의 열매들을 먹고 사는 우리들 역시
하느님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이래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하늘을, 하느님을 잊은 것이 오늘날의 불행이자 비극입니다.
 
물속에 살면서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물고기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면서
하느님을, 하느님의 사랑을 까맣게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우선적으로 끊임없이 묵상해야 할 주제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바로 이게 관상의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여 매일 미사를 통해
하느님 사랑의 열매인 아드님의 성체를 먹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 하느님의 사랑을 절감한 아드님 예수님의 고백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주님은 사랑의 샘, 관상의 샘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주님의 사랑으로 충전시켜야
우리 사랑 메마르지 않습니다.
 
이래서 자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 없는 바쁜 활동의 삶이
우리의 마음과 몸을 피폐케 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관상적 삶에서
끊임없이 샘솟는 기쁨이요 행복이요 활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하지 않고 하느님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은 사랑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에게서 주입되는 사랑으로 사랑하면 됩니다.
 
말 그대로 사람으로 살기위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밥 먹어야 살듯, 사랑해야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의 영양실조도 무섭지만
사랑 부족으로 인한 마음의 영양실조는 더 무섭습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을 때
꽃처럼 활짝 피어나 충만한 존재가, 정체성 뚜렷한 참 내가 됩니다.
 
두려움을 몰아내는 사랑입니다.
사랑 없어 두려움과 불안으로 오그라들고 위축되어 겪는
정체성의 위기입니다.
 
아무리 재물 많고 지위 높고 권력 있어도,
사랑 없으면 무조건 가난뱅이 실패인생입니다.
 
이런 보이는 세상 것들로 아무리 채워도
마음의 공허는 여전할 뿐,
사랑이 아니 곤
그 무엇도 무한한 영혼의 목마름을,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랑은 요란하거나 화려하거나 비상한 사랑도 아니요
추상적 막연한 사랑도 아닙니다.
 
마음만 있으면 가진 것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말 그대로 주님처럼,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면 됩니다.
 
알게 모르게 이런 사랑으로 살아 온 우리 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하여 주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내 이기적 편협한 변덕스런 사랑이 아니라
주님의 한결같은 충실한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주님 같은 사랑입니까?

자유롭게 하는 사랑,
자연스럽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배려하는 사랑,
자리를 존중하여 지켜주는 사랑,
바로 이게 주님 같은 사랑입니다.
 
하느님 배려의 사랑 안에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생기 차게 자라나는
수도원 주변의 초목이나 밭의 채소들을 통해서도
이런 하느님의 사랑은 잘 들어납니다.
 
또 하나 차별 없는 사랑입니다.
 
사랑에 구별은 있을 수 있어도 차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사랑을 깊이 깨달은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주님처럼 자유롭게 하는 사랑,
자연스럽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배려하는 사랑,
자리를 존중하여 지켜주는 사랑,
차별 없는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공동체를 만들어 줍니다.


서로 사랑할 때 주님과 친구가 되고 주님과의 우정도 더욱 깊어갑니다.

정말 이게 사랑의 큰 축복이요 참 부유한 삶입니다.
 
주님이 친구가 될 때 도대체 무엇이 부족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대신
‘주님은 나의 친구 아쉬울 것 없어라.’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의 다음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나는 너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친구입니다.
우리를 뽑아 친구로 삼아 주신 주님이십니다.
 
서로 가장 잘 아는 사이가 친구가 아닙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충실히 지켜
친구이신 주님과의 우정이 깊어질 때 풍
성한 열매의 관상적 삶이요, 아버지의 뜻에 충실한 삶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주님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까?
혹은 주님의 친구로 살고 있습니까?

과연 살아갈수록 미운 정 고운 정 속에 주님과의 우정도 깊어지는지요?


사랑의 정점에서 주님을 친구로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친구이신 주님과의 우정이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풍요롭게 생기 차게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와의 우정을 깊게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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