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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6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1 조회수44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부활 제 7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6-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7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서로 말하였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18 그들은 또 “‘조금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고 싶어 하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조금 있으면 너희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조금 더 있으면 나를 보게 될 것이다.’ 하고 내가 말한 것을 가지고 서로 묻고 있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 오후에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오체투지 순례정신을 경배하는 미사가 있었습니다. 명동성당 성모동산에서 107일째 순례를 마치고 봉헌한 미사에서 김인국 신부님은 강론 말씀에서 우리에게서 가장 '나뿐' 것은 ‘나뿐'이다는 그런 생각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말의 '나뿐'의 뜻이 참 묘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기 마련이며(會者定離),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 올 것이다(去者必返)'는 경구가 생각나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느님의 뜻을 아셨으므로 예수님은 가고 오는 것에 전혀 미련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고 오는 것에 대하여 즐거워하고 애통해하며 일희일비하고 있습니다.

슬픔이 없으면 기쁨도 없고, 이별이 없으면 재회도 없고, 너가 없으면 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 너와 나 등 이렇게 모든 것을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으므로 슬픔의 고통, 이별의 고통, 원망하는 고통 등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모든 분별심을 내려놓는 것이 下心일 것입니다. 

우리는 자비나 사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이를 실천하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뱁새가 황새따라 가려다가는 다리 가랑이가 찢어지므로 저는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마음을 자비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을 사랑으로 생각을 한 번 바꿔보려고 합니다. 이 정도는 노력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도 하지 못하면서 자비를 운운하고 사랑을 운운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측은지심도 생겨나고 사랑하는 마음도 생겨날 것 같습니다.

한 알의 꽃씨를 뿌려서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다면 꽃을 피우기 위해서 우리는 아낌없이 꽃씨를 화단에 뿌릴 것입니다. 그러나 꽃씨가 꽃을 맺는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꽃씨를 화단에 뿌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꽃씨를 땅에 버린 것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내일이면 제자 분들은 꽃씨가 되신 예수님이 땅에 묻힌 것으로 알고 애통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 분들은 백만 송이의 장미꽃으로 화려하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기뻐할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이치를 깨달아 우리 삶 속에서 이를 실천하라는 말씀이 오늘의 가르침으로 묵상하였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최후 모습을 그려보며 담사동이란 인물을 소개하는 것으로 오늘 묵상을 끝내려고 합니다. 담사동은 19세기말 1, 2차 아편전쟁 등 열강의 침략으로 청조가 위태롭게 되자 법과 제도를 개혁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자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한 3인방의 한 사람입니다. 광서제의 지지를 받은 변법자강운동은 서태후 등 수구파의 반발로 100일 천하로 끝나고 서른세 살의 나이로 형장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그는 형장에서 "도둑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뜻을 세웠으나, 힘이 부족하여 영광스러운 죽음의 길을 가게 되었으니, 기쁘고 기쁘구나!"(有心殺賊, 無力回天, 死得其所, 快哉快哉)하며 마지막을 남기고 갔습니다. 세른 세살의 나이에 죽음 앞에서 '기쁘고 기쁘구나!'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함께 운동을 주도했던 강유위, 양개초는 일본으로 망명하였으나 담사동은 '개혁을 하겠다는 사람이 죽음이 무서워서 도망갈 수 있느냐'하며 망명을  택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죽음 앞에서 이렇게 초연한 삶을 살다 가신 그 모든 분들은 주님의 대전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당신이 떠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세상에 영원한 기쁨을 주기 위해서 기꺼이 이별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오늘도 '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혜의 성령님을 하루 빨리 보내 주시여 이런 저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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