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4 조회수794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5월 24일 주님 승천 대축일 나해
 
 
 Go into all the world
and preach the good news to all creation.
(Mk.16.15)
 
 
제1독서 사도행전 1,1-11
제2독서 에페소서 1,17-23
복음 마리코 16,15-20
 
 
금붕어는 아무런 위협이 없는 어항 안에서 3천 개 정도의 알을 낳지만, 위험이 가득한 자연 상태에서는 1만 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고 합니다. 또한 열대어는 어항 속에 자기들끼리 두면 비실비실하다 결국 죽어버리지만, 천적과 같이 두면 항상 힘차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물고기에서만 이런 모습이 발견될까요? 아닙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 주변의 자연 안에서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호두와 밤은 서로 부딪혀야 풍성한 열매를 맺고, 보리는 겨울을 지나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알곡이 들어차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가야 바다에 영양분이 풍부하고, 천둥이 치고 비가 쏟아져야 대기가 깨끗해집니다. 평탄하고 기름진 땅보다 절벽이나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꽃이 더 향기롭고, 늘 따뜻한 곳에서 자란 나무보다 모진 추위를 견딘 나무가 더 푸릅니다.

바로 고통과 시련이라고 할 수 있는 위협을 이긴 뒤에야 더 큰 결실을 맺게 된다는 것을 자연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봅니다.

‘고통과 시련은 기쁨과 희망의 한 부분이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이 우리의 삶 안에서 없어져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고통과 시련이 제발 좀 없었으면 합니다. 대신 항상 좋은 것만을 그리고 편한 것만을 누리면서 지냈으면 합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정말로 행복할까요? 그 순간에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행복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이 채워진 것뿐입니다. 그래서 금방 행복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또 다른 불평과 불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진정한 행복이란 고통과 시련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 그 사실을 우리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이 점을 잘 알고 계셨나 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 승천 대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사랑하는 제자들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이 땅에 놔두고 하늘로 혼자 올라가셨을까요? 제자들이 능력 많고 믿음이 굳건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한 없이 부족한 제자들이기에 그들을 이 땅에 두고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것이 불안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라는 말씀을 남기신 채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당신의 제자로 삼았으면 끝까지 책임을 지셔야지 왜 그렇게 무책임한 모습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을까요? 바로 제자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고통과 시련을 자기들의 몸과 마음으로 이겨내야 할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그것은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주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힘차게 생활하셨으면 합니다.

“고통과 시련은 기쁨과 희망의 한 부분입니다.”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라. 단, 결정은 분명히 하고 그 결정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라(데카르트).




지혜로운 삶의 선택(법정스님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물어야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들어있다. 그러나 묻지 않고는 그 해답을 이끌어낼 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거듭거듭 물어야 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또한,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알아야한다. 작은 것과 적은 것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크고 많은 것만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까 늘 갈증 상태에 놓여 있다. 소유물은 우리가 그것을 소유하는 이상으로 우리 자신을 소유해 버린다. 내가 무엇인가를 가졌을 때 그 물건에 의해 내가 가짐을 당하는 것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이것은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A Day With You - Omar
 
바로가기http://www.bbadaking.com/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