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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눈물을 안고 봉하마을을 갑니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4 조회수646 추천수7 반대(0) 신고
             오늘 눈물을 안고 봉하마을을 갑니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쯤입니다. 밤새 잠을 못 이루며 잠자리에서 뒤척이기만 하다가 몸을 일으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지금 서울에 와 있습니다. 대학생 아이들의 합정동 자취방에서 이 글을 씁니다.

어제(23일/토) 서울에 왔습니다. '오체투지 순례' 때문이고, '용산미사' 때문이고, '굿자만사(가톨릭 굿 뉴스 자유게시판에서 만난 사람들)' 모임 때문에 또다시 서울에 왔습니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 옆에 '미리내실버타운'이 있습니다. 유료 양로원이지요. 방상복(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설립하고 운영하시는 양로원입니다. 방 신부님은 그 유료 양로원의 수익금으로 무료 양로원과 여러 개의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십니다. 그 여러 개의 복지시설들을 일러 '유무상통마을'이라 부른답니다. 유(有)와 무(無), 즉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통하고, 그러므로 '하나'라는 뜻이지요. 몇 년 전에 '노인의 십계명을 아십니까?'라는 글로 인터넷 세상에 유무상통마을의 아름답고도 은혜로운 속내를 자세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 후 방상복 신부님에 관한 얘기를 또 한번 한 적이 있지요. 그 신부님을 일러 '준자(遵者) 신부님'이라고 했습니다. 신자(信者)들은 많아도 준자(하느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워하시며, 우리 모두 '준자'가 되자고 하시는 말씀에 크게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방 신부님과 여러 번 함께 식사하는 기회를 갖게 되면서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양로원 노인들과 생선 횟집에서 음식을  드시며, 노인들께 이것저것 생선 음식을 권하면서도 당신은 전혀 생선 음식을 드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생선회는 물론이고, 구운 생선도, 생선 찌개도...

처음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두 번 세 번 신부님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되자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겼고, 급기야는 연유를 여쭙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신부님은 처음에는 별 말씀이 없으셨지만 나의 거듭된 요청에 '실토'를 해주셨지요. 10년 전쯤의 사제 피정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는 극기의 생활을 한가지 희생으로 하느님께 봉헌하며 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그 생각을 '결심'으로 가져갔고, 그 결심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즉 하느님께 맹세를 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신부님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생선회를 비롯한 생선 음식 일체를 입에 대지 않고 사신답니다. 생선 횟집에서 갖가지 생선 음식들을 앞에 놓고도, 여러 사람들에게 맛있게 자시라고 권하기만 할 뿐 당신은 일체 입에 대지 않는 것이지요.

나는 요즘 그런 방 신부님을 자주 떠올립니다. 지난해 이맘때(5월과 6월) 44일 동안의 병상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후 한방으로 신장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금기 식품과 제한 식품이 많지요. 더욱이 나는 통풍 환자여서 등 푸른 생선이며 육류 등 단백질 음식을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요즘 술은 물론이고 육류 음식과 등 푸른 생선, 그리고 제일 좋아하던 생선 내장 등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식탁에 놓인 그 음식들을 외면하고 무시하며 식사를 할 때는 괴롭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방상복 신부님을 생각합니다. 방 신부님을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음식 절제와 극기에 힘을 얻곤 하는 거지요.

그렇게 내게 힘을 주시는 방상복 신부님이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을 또다시 유무상통마을로 초청해주셨습니다.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은 아무 규약이나 조직 형태를 갖추지 않고도 지난 2004부터 매월, 또는 격월 간격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모임을 갖게 되었지요. 하느님 신앙 안에서 세상에 대한 시각이나 가치관이 일맥상통하는 사람들이기에, 또 가치관이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하느님 신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에 만남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05년과 2007년, 태안에서도 모임을 가진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06년 5월 방상복 신부님의 초청으로 유무상통마을에서 모임을 갖고 하루 동안 즐거운 시간을 가진 적이 있는데, 신부님께서 이번에 또 초청을 해주셨습니다. 올해의 5월 '성모의 달' 모임을 유무상통마을에서 가져보자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에 많은 형제 자매들이 기꺼이 화답을 해서 24일(주님 승천대축일)로 날을 잡았고, 서울의 한 분 형제님이 차량(버스 대절) 제공을 해주셨답니다.

우리 부부는 처음에는 차를 가지고 24일 아침에 직접 유무상통마을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2006년에도 그렇게 했었지요. 그런데 오체투지 순례와 용산미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체투지 순례와 용산미사에 이미 여러 번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체투지 순례와 용산미사 참례를 상관하지 않는 상태로 출타를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 편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 끝에 이렇게 계획을 세웠습니다. 23일은 아내가 출근하지 않는 '놀토'이니 오전에 차를 가지고 서울로 가자. 서울 합정동 아이들 자취하는 집 앞에 차를 놓고, 서울 북부(은평구)를 지나는 오체투지 오후 순례에 참여하자. 그리고 저녁에는 용산참사 현장으로 다시 가서 7시 미사에 참례하자.

그런 다음 아이들 자취방에서 자고 주일 아침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유무상통마을을 가자. 그리고 저녁에 서울로 올라가서 요즘 혼자 있는 아들녀석과 하룻밤을 더 자고 월요일 새벽에 내려오자.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출발하면 상습정체구간인 서부간선도로도 막히지 않고, 두 시간이면 충분할 테니….

그래서 어제 서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오전에 서울로 곧바로 오지 못하고 유무상통마을을 들러서 오게 되었습니다. 방상복 신부님께서 특별히 좋아하시고, 여러 형제들이 과거에 태안에서 맛도 보고 취해보기도 하면서 맛이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태안의 '소원막걸리'를 가지고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제 아침 8시쯤 태안읍에서 30리 거리인 소원면 소원양조장을 갔습니다. 막걸리 20병을 샀습니다. 주인이 다섯 병을 덤으로 주더군요. 그 막걸리 스물 다섯 병을 싣고 굳이 유무상통마을 들러서 알뜰히 내려놓고 서울을 간 겁니다.

그런데 마음은 즐겁지 않았습니다. 슬픔이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수없이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아내와 말없이 묵주기도에만 열중했습니다. 그러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각을 하고 또 하고 했습니다. 눈물이 나서 조금은 운전에 방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서울로 들어서서, 요즘 오체투지 순례와 용산미사 참례에 열심인 한 자매에게 전화로 물으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으로 오체투지 순례자들이 모두 울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오체투지 순례를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체투지 순례는 다음에 다시 참여하기로 하고, 우리 부부는 일단 합정동으로 왔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자취방 청소 일 때문에 집에 남고 나는 용산으로 갔습니다.

덕수궁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갔다가 경찰 때문에 조문도 못하고 왔다는 자매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매들은 덕수궁 대한문 앞 상황을 얘기하면서, "차려진 분향소에 가지도 못하게 방해하는 경찰이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냐",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경찰이 있을 수 있느냐"며 흐느껴 울더군요.

잠시 후 또 한 명의 자매가 와서 나와 악수를 하고는 역시 시청 앞 상황을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더군요. 턱을 떨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던 그 자매의 모습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의 용산미사는 문정현 신부님과 이강서 신부님, 두 분이 집전을 했습니다. 그 미사 얘기는 나중에 별도로 전해 드리겠습니다. 용산참사에서 시아버님을 잃고 남편은 구속되어 있는 젊은 부인이 재판장에게 보낸 탄원서를 낭독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가슴 아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사실과  젊은 부인의 탄원서 내용이 겹쳐서, 울분과 비탄 속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용산미사를 마치고 10시쯤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또 인터넷을 열고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들어가 보니, 유무상통마을 방상복 신부님의 '공지'가 올라 있더군요. 24일 오후 2시 봉하마을을 가서 연도를 하고 오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예정을 바꾸어 24일 아침에 차를 가지고 유무상통마을을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부부도 봉하마을을 가기로 한 것입니다. 미처 봉하마을 연도 생각을 하지 못해서 잠바 차림으로 왔기 때문에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 큽니다. 하지만 방 신부님과 함께 봉하마을에 가서 조문을 하고 연도를 하고 오려고 합니다. 아내의 월요일 학교 출근 때문에 봉하마을에서 돌아오는 대로 태안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유무상통마을까지 차를 가지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굿자만사 형제 자매들과 버스를 타고 함께 가고 오는 즐거움과, 엊그제 논산으로 '농활'을 가서 오늘 돌아오는 아들녀석 얼굴 보는 일을 다음으로 미룬 것이지요.

아무튼 아내와 그렇게 의논 결정을 하고 12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는데, 잠이 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길래 잠이 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수없이 한숨만 내쉬다가 결국은 4시쯤 몸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조갑제라는 사람이 쓴 글에서 받은 충격이 가장 큰 이유일 듯싶더군요.

"언론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서거(逝去)'라는 말을 쓰는 것은 옳지 않다. '자살'이라고 써야 한다"라는 요지의 글이었습니다. 참으로 무지막지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어떻게 사람의 얼굴을 하고 살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또 어떤 교우는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 "자살은 대죄 아니냐. 자살을 하면 지옥에 가는 거 아니냐. 자살을 한 사람을 위해서 미사를 지내고 연도를 해도 되는 거냐"는 요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본질적으로 '자살'은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직접적인 타살과 간접적인 타살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봅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든 간에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모든 살아 있는 사람(신자)들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죽으려고 물에 뛰어든 사람도 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동안 하느님께 용서를 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만이 아실 수 있는 일입니다. 또 순교자들 중에는 배교 결심을 하고 그 결심을 미처 표시하기 전에 칼이 떨어져서 순교를 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 역시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것은 하느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그를 위해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신자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지요.

더구나 천주교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몰랐던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도 살아 있는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연옥 교리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믿음 천국, 불신 지옥'만이 있는 종파와는 차원이 다른 거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례성사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습니다. 세례명이 '유스토'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하느님을 신앙하며 사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그분의 '양심'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봅니다. 그 분은 '양심' 때문에 죽음을 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양심을 위해서 그렇게 죽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결코 단순한 죽음이 아닙니다. 의로운 죽음입니다. 양심 때문에, 양심을 위해 죽었음으로 의로운 죽음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생각과 양심의 과제를 안겨준 죽음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각성과 양심의 회복을 촉구하며 어떤 계기를 안겨줄 죽음이기도 합니다.

양심의 표징이며 의로운 죽음의 표상이기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그분을 흠모합니다.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봉하마을에 가서 눈물을 참으며, 아니 눈물 속에서 열심히 연도를 할 생각입니다. 존경하는 방상복 신부님과,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하는 연도이기에 더욱 정성껏 기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았습니다. 이 글을 인터넷 세상에 띄우고 곧 유무상통마을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밤을 꼬박 새워서 운전이 조금 걱정스럽긴 합니다. 장롱면허 소지자인 마누라에게 운전대를 맡길 수는 없고…. 하지만 하느님께서 보호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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