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스승님을 믿게 되었다는 제자들의 고백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버려두고 저마다 자기 살길을 찾아 흩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수난의 순간, 제자들은 스승을 버려두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미가 스승과 함께 고난을 겪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가는 제자들의 비겁한 모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가지고 당당하게 ‘제 갈 곳으로’ 파견되는 모습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예수회 회원으로 살면서 새로운 곳으로 파견될 때마다 두렵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새 사도직이나 학업이나 공동체나 할 것 없이 파견받을 때마다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함께 교차하면서 겁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그런 경험이 늘어가면서 한 가지 배운 것은 그 두려움을 ‘잘’ 받아들이는 방법입니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 속에서 두 팔을 활짝 펴고 나를 기다리고 계신 예수님의 환한 얼굴을 보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말씀하시며 아낌없이 격려해 주시는 그분을 보는 것보다 더 큰 위로는 없으니까요.
일상의 삶 속에서 ‘제 갈 곳으로’ 파견받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처하거나 힘든 일이 닥칠 경우, 두려움을 갖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의 순간 내가 혼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분명 그 두려움은 우리가 느끼는 단순한 감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눈을 뜨게 해주고 평화를 선물로 주는 ‘기적의 묘약’이 될 것입니다.
이영석 신부(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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