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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5월 28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7 조회수843 추천수17 반대(0) 신고

 

 

5월 28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 - 요한17,20-26

 


“아버지,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맺지 않고 매이지 않아 자유롭고>


   한 병원에 미사를 드리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제의실에 걸린 달력이 아주 독특해서 한 장 한 장 넘겨보았습니다.


   간결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담은 판화들과 함께 짧은 글귀들이 소개되고 있었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제 심금을 울렸습니다.


   “가지는 것이 기쁨이라면

    

    잃는 것은 슬픔이겠습니다.


    많이 가진다는 것


    잃을 것 또한 많으니


    귀함이 편안함 같진


    못하겠습니다.”



   “마음 일 없을 때


    유유자적하고


    바람 저절로 불 때 맑다.”



   “명리의 다툼이야 남들에게 맡기어


   모두 취하더라도 미워하지 말고


    고요하고 담박함을 내가 즐거워하되


    홀로 깨어있음은 자랑하지 말고


    맺지 않고 매이지 않아 자유롭고...”



   잠시였지만 마치도 깊은 산중에 홀로 앉아 하늘에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 보는듯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느님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제 머지않아 떠나가실 예수님께서 남아있는 우리에게 유언처럼 남기신 말씀이 ‘일치’입니다.


   ‘일치!’ 말이 쉽지 진정 어려운 일입니다. ‘일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가를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마지막 유언으로 서로 일치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최근 한 종교단체에서 계속되고 있는 원로 창설자와 현재 책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세력다툼 양상을 보고 기가 차지도 않았습니다. 신자들까지도 패가 나눠 상호 비방은 예사이고, 폭력행위가 오갑니다.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인 맞고소 사건만 해도 수십 건이랍니다.


   세상 안에 존재하지만 세상을 초월해서 살아야할 종교인들, 부단히 보다 높은 가치관을 선택하고 영적으로 살아가야 종교인들, 그래서 이 혼탁하고 캄캄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밝게 하는 등불처럼 살아야할 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더하니 이게 될 말입니까?


   그래서 일치는 자기 낮춤을 전제로 시작 되는가 봅니다. 자기 본위의 삶을 탈피한 이타적인 삶, 쉬지 않고 밑으로 내려가는 삶, 마음 크게 먹고 크게 한번 물러나는 삶을 통해 너와 나의 일치는 시작됩니다.


   명예나 권세는 그것을 쫓는 사람들에게 맡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때 요원할 것만 같던 일치는 의외로 가깝습니다. 


   며칠 전 저희 아이들이 어버이날 행사한다고 앞에 앉혀놓고 모두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불러주던 노래 가사가 참으로 예뻤습니다.


   “딩동댕 초인종 소리에 얼른 문을 열었더니, 그토록 기다리던 신부님 문 앞에 서계셨죠.


   너무나 반가워 웃으며 신부님 하고 불렀는데, 어쩐지 오늘 신부님 얼굴이 우울해 보이네요.


   무슨 일이 생겼나요. 무슨 걱정 있나요. 마음대로 안 되는 일 오늘 있었나요.


   신부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신부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비록 다듬어지지 않는 목소리, 사춘기의 거친 목소리였지만 한 마음이 되어, 한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다보니 얼마나 듣기가 좋았는지 모릅니다. 저 역시 아이들과 한 마음이 되어, 마음으로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니 천상음악이 따로 없었습니다.


   대중들 앞에 홀로 서서 독창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부담스럽고 어색한 일인지요? 그리고 또 얼마나 힘들고 두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래 부를 때, 얼마나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가 되고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성가대 활동이 정신건강에 그렇게 좋은가 봅니다.


   혼자서, 아니면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 함께 뭔가 한다는 것, 함께 나아간다는 것, 함께 노력한다는 것, 일치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떠나가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겨주신 말씀이 ‘일치’인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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