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알려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0-26)
◆수련원 시절, 매일 잔디밭에 나가 잡초를 뽑을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잔디밭에 있는 잡초만 뽑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자라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잡초를 제거하도록 도와주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수련원의 잡초 제거 프로젝트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잔디의 마음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잔디는 민들레와도 함께 어울리고 싶어할지도 모르고, 토끼풀이과도 더불어 자라고 싶어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잔디는 아무 말이 없건만, 그것을 보는 인간은 서로 다른 것이 어울려 함께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다른 생각, 다른 종교, 다른 민족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나와 다른 누군가와 조화롭게 어울려 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듯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자기 내면 안에 있는 다양한 감정과도 통합적으로 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특히 자기 내면의 한 부분인 나쁜 면을 인정하지 못한 채, 때로는 그것을 감추고 때로는 억압하면서 좋은 면만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편을 나누고 있으니까요. 자신 안에 있는 잡초, 곧 나쁜 면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과 화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자신과도 화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내 안에 있는 나쁜 면을 인정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 진실한 마음으로 고개 숙일 수 있습니다. 고개 숙이는 그 순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것도 같은 생각, 같은 이념, 같은 믿음만을 가지라고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것들을 인정하듯이, 내 밖에 있는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속에 하나가 되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