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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의 십자가
작성자김기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29 조회수435 추천수2 반대(0) 신고

평화의 십자가

 

나는 언제부터인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지금껏 배워 온 것과 달리 평화로움을 발견한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은 “「고통의 십자가」가 아니라 「평화의 십자가」”라고 감히 생각을 해 본다.

 

이는 일시적인 감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여러 날 묵상을 통하여 찾은 나만의 영성(주장)이라고 해도 좋다. 신자들이면 그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체험 등 나름대로의 성령을 품고 사실 테니까.

 

과연 괴변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십자가의 고통을 모르는바 아니고, 십자가의 길인 골고타 언덕을 오를 때의 주님의 모습은 너무나 처절해 도저히 인간된 마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 엄청난 고통에 함께 하면서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가 두려웠고 스스로 택한, 보여 지기 위한, 알아듣도록 하기 위한 성사적사건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길은 늘 고통으로 다가왔고 매달려 계신 고통의 모습, 축 쳐진 모습의 예수님을 뵐 때 마다 가슴을 치며 아파했던 것이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 27,46)하고 때가 이름을 예고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로 전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하신 말씀은 바로 평화인 것이다. 바로 사랑의 결정체이다. 사랑했기에 스스로 고통의 길을 걸었고, 사랑 때문에 고통의 십자가를 견디어 내신 것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에 예언되어 있던 그 고난의 과정, 인간으로서의 여정. 말씀하신대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자발적인 가난의 모습으로 강림하신, 하느님의 예기된 인간으로써의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에 이제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이루어진 그 순간. 삼위일체이신 성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의 소명은 십자가의 고통을 다하고 죽음으로 부활하실 채비를 차리는 그 순간, 십자가는 평화이다. 인간의 여정 역시 십자가의 평화를 보기 전에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회개와 보속의 삶. 십자가에서 웃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해 보라. 돌아가신 예수님이 매달려 있는 십자가는 평화의 상징이다. 이미 그곳에 달려 있는 분은 평화 그 자체이시다.

 

알아듣기에 둔한 인간들에게 표양이 될 수 있는 것은 어차피 그들의 언어인 고통이 강하게 수반되어야 따를 것이다. 변화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형체인 상징적인 십자가를 두고 고통을 재현해서는 안 된다. 고통만 바라보는 십자가의 의미라면 우리는 참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요, 형제라고 못 할 것이다.

 

자칫 이단적 사고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내 안에 그 분의 가르침이 그득하고 늘 상 십자가의 고통의 의미를 생활에서 깨우치고 있다. 조롱당하고, 천시하고, 모욕을 당하시다 끝내 고통이 따르는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그 분의 행적이야 무어라 말씀드리겠는가?

 

돌아가시기 직전 “다 이루어졌다.”하심은 바로 이 말씀을 통해 인고의 고통은 끝난 것이다. 이제 십자가에 매달려 계셔도 그는 이미 십자가를 벗어나 부활하신 예수님이시기에 평화의 십자가로 남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고통 뒤에 영원한 행복과 희망이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다.

 

부활과 희망, 천상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바로 시작이기도 한 절정의 모습. 말씀하신대로 정말 이제 모두를 이룬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오신 한 인간은 고통 끝에 하실 바를 다 하시고 다시 승천하신다. 말씀하신대로 이제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분은 우리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자기 십자가를 정성되게 권하신다. “네 십자가는 네 스스로가 지고 감당하고 나를 따르라.(마태 16,24) 그렇게 함으로써 너 역시 평화의 십자가를 마음 안에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시는 듯 하다.

 

이를 돕는 것이 부활이라는 우리 최대의 기쁨의 장치가 있다. 고통에서 평화로 넘어가는 그 순간, 참다운 부활을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평화의 시간(찰나)은 바로 죽음이다. 우리가 죽지 않고는 참 평화를 맛볼 수 없다. 그렇다고 죽음 예찬론자는 아니다. 더구나 스스로 자해하는 죽음만 바라보는 몽매한 사고도 아니다.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그 순간까지 가르침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을 때 우리는 평화의 십자가를 맛보게 될 것이다.

 

바라보라. 그리고 평화의 십자가에서 보여 주는 삼위일체의 모습을.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행위 모두가 성부께로부터 온 것이다. 막상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성자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이신 것이다. 이 숭고한 진리를 두고 삼위일체를 무엇으로 설명하려 하는가. 지고하신 하느님의 안배요, 생명의 극찬이다.

 

십자가 위에서 웃고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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