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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령님과 성모님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5-31 조회수831 추천수15 반대(0) 신고

 

 

 

성령강림 대축일 - 성령님과 성모님

 

 

 

 

 

 저희 집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구멍가게 하나 없었습니다. 유일한 군것질을 할 수 있는 기회라곤 리어카를 끌고 가끔 오시는 강냉이 장수 아저씨였습니다. 집에 있는 쇠붙이며 병, 고무신등 무엇이든 가져가서 강냉이를 얻어먹었습니다.

한 번은 그 아저씨가 동네 아이들 모두에게 강냉이를 공짜로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각자 집에 들어가서 강냉이를 담을 것들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의 친구는 큰 대야를 들고 왔습니다. 저는 그저 양 손으로 받았습니다. 어린아이가 양 손을 모아서 만들 수 있는 공간은 그리 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친구는 한 대야 가득 강냉이를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가 똑같은 선물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더 받고 어떤 사람은 덜 받습니다. 예수님은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라고 하시며 거룩한 것을 합당하지 못한 사람에게 주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그릇대로 은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자체이십니다. 사랑은 자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신의 전부를 주십니다.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완전하게 사랑한다는 뜻도 되지만 아들이 그 선물을 합당하게 받을만한 그릇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사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시는 ‘전부’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아들 또한 아버지께 당신의 전부를 돌려드립니다. 십자가상에서 아들은 자신의 영혼과 영을 아버지께 돌려드립니다. 두 분은 이렇게 서로에게 자신의 전부를 비우시고 가장 고귀한 것을 주십니다.

성령님 또한 그들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버리고 아버지께, 또 아드님께 왔다갔다를 반복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만이 아니라 성령님 또한 하느님이시면서도 당신의 모든 것을 비우셔서 아버지와 아들에게 순종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시는 사랑을 하시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모든 것, 즉 성령님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지으면서 자신의 그릇을 더러운 것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죄는 마음을 돼지우리로 만듭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우리에게 은총을 주시고 싶어도 당신의 성령님을 돼지우리에 들어가게 하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인간은 죄로 인해 은총이 단절되게 된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려고 할 때는 필연적으로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야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에게 어려운 신학적 강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아이들이 수백 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가운데 어려운 신학강의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을 위해서라도 신학에 대해 이야기 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신학 강의라도 그 중에 단 한명도 그것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면 쓸데없이 못 알아듣는 강의를 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도 인간에게 당신의 모든 것, 성령님을 주시기를 원하셨지만 사실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서 그 성령님을 아드님처럼 온전하게 받을만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성령님이 충만히 오실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께는 세상 창조 때부터 마련해 두셨던 ‘성령의 그릇’이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죄에 물들지 않도록 잘 보존해 두신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분이 마리아이십니다. 마리아는 이렇게 처음부터 구원사업에 동참하도록 마련되신 분이십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천사를 보내십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이고 성모송의 첫 구절이기도 한 이 말씀 안에 인류구원에 대한 모든 신비가 다 들어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은총을 잃게 되었고 아무리 성인이라 하더라도 성령의 은총을 충만히 받을만한 사람이 없었는데, 성모님만이 ‘은총이 가득’하다고 인사한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조차도 없어서 성령님이 충만하게 임하실 수 있는 완전한 그릇이란 뜻입니다. 성모님이 없으셨다면 성령님이 충만하게 오실 수 없었고 그리스도도 잉태되어 세상에 오실 수 없었을 것이고 온전한 의미의 구원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로지 성모님만이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여 세상에 하느님을 태어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성령의 그릇이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이 세례를 받고 죄가 용서받았을지라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 분은 본래부터 깨끗하신 분이고 세례를 받더라도 죄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에 성모님 외에는 어떤 누구도 가브리엘 대천사가 한 인사, ‘은총이 가득하신’이란 말을 들을 자격이 안 됩니다.

 

성모님은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 하느님을 잉태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일뿐만 아니라 그 은총을 부족한 우리에게도 나누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성모님은 은총의 그릇이고 통로일 뿐입니다.

하느님을 잉태한 성모님은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이 때 마치 불에서 불이 옮아 붙듯 성모님을 접한 엘리사벳과 그 태중에 있는 미래의 세례자 요한까지도 성령으로 가득 차 기뻐 뜁니다.

마치 상수도 집수장에서 모든 물이 모여 각 집에 나눠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은총을 성모님께 충만히 주시고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성모님을 ‘은총의 중재자’라 용기 있게 일컬었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성모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눈치 채십니다. 포도주가 없다고 하여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다는 말을 듣고 어머니께 “그것이 저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입니까?”라고 반문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포도주가 떨어질 정도로 마셨다면 이미 충분히 마셔서 다 취해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더 취하도록 술을 더 만들어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당신이 은총의 중재자이심을 아십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포도주로 상징되는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오시지 않으시고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과의 혼인이 깨지게 된 것에 대해 당신이 아드님께 성령님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중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모님과 사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있는 그 모습입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바로 이 성령강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성모님은 아직 때가 오지 않았지만 미래의 성령강림을 상징하는 성령님의 기적을 얻어내십니다. 성모님이 아니면 어떤 누구도 원치 않으시는 예수님께 이 기적을 얻어낼 수 없었습니다.

 

성령강림 때 성모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래서 너무 당연하고 그 분께 더 감사하는 날이 되어야 하는 것도 너무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 없는 성령강림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마치 구약의 엘리야처럼 하늘에서 불과 물이 내려오게 하신 분이고, 파티마에서처럼 역시 태양의 불덩이가 세상에 내려오실 수 있도록 중재하신 분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성모님께 달려가는 사람은 끊임없는 성령강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내려오실 때 유일하게 한 그릇, 바로 성모님을 향해 내려와 온 세상에 퍼지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교회 안에서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고 있으면 됩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사도 1,14)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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