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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7. 권위적?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5 조회수529 추천수3 반대(0) 신고

 

권위적?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전하는 진리만이 참되다고 말한다.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갈라 1,8).
그런가하면 다른 사도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사도직분을 치켜세우는 언사도 자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도들이나 주님의 형제들이나 케파처럼 신자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다는 말입니까?”(1코린 9,5), “나는 결코 그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2코린 11,5 ; 12,11).

   게다가 수시로 자신을 본받으라고 외친다(1코린 11,1; 필리 3,17).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1코린 4,17). 어떤 때에는 동반자인 실바누스와 티모테오를 포함한, ‘우리를’(1테살 1,6) 본받으라고 한다.

   바오로 친서의 이런 문장들을 볼 때, 사도는 자칫 자신만을 내세우며 다른 동료들과는 대화도 타협도 하지 않는, 교만하고 권위적인 인물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사도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대목들도 많다. 바오로 사도는 다른 사도들이 애쓰고 수고한 것들을 인정할 줄 알았고, 자기 권한의 범위와 한계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2코린 10, 15-17). 그럼에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는 왜곡된 가르침이나 유다교의 구습으로 회귀하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았다. 즉 신앙의 본질을 희석하는 시도에 부딪칠 때에만 그가 누구이든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며 단호하게 대처했던 것이다.

    그렇다. 사도는 평상시에는 오히려 한없이 부드럽고 겸손한 분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마지막 순서로 자신을 불렀다고 하며 스스로를 사도로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이라고 하는 대목은(1코린 15,5-9) 기존의 교회 질서와 계통을 존중하는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는 확신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필립 1,1)이며 예수님을 위한 ‘사람들의 종’(2코린 4,5)이라고 한다. 또한 사도는 자신에게 주신 권위는 어디까지나 공동체를 성장시키라고 주신 것이지, 무너뜨리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고 한다(2코린 10,8).

그러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자신의 권위로 준엄하게 다룰까봐 멀리서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2코린 13,10). 이는 사목자의 권위가 지배의 권위가 아니라 사랑의 권위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도는 늘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인자한 어머니였고(1테살 2,7), 인도해주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1테살 2,11; 1코린 4,15). 자신의 신념은 뚜렷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1코린 9,22) 사랑과 겸손의 권위를 가졌던 분이었다.

   그렇다.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감 있게 양 떼를 이끌되, 미혹한 이들에게는 강한 가르침으로 약한 이들에게는 너그러움으로 다스리는 목자, 무엇보다 겸손과 사랑을 갖춘 목자에게서야말로 진정한 권위가 느껴지며 저절로 따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st.paul in prison>

이인옥(체칠리아) 말씀봉사자,
- 이 글은 수원교구 주보 3면에 기획연재하고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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