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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혜 자체이신 분-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5 조회수447 추천수5 반대(0) 신고
 

 

지혜 자체이신 분- 윤경재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마르12,35-37)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당신을 지칭하실 때 여간해서는 메시아(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과 군중이 예수께 그리스도 또는 메시아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호칭과 메시아라는 명칭이 복음서에서 각각 30여 회 이상씩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호칭하는 대목은 공관복음서에는 마르코복음 9,41절과 마태오복음 23,10절 그리고 요한복음서 17,3절에서 도합 세 번 나올 뿐입니다. 이 세 구절도 과연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지 그 진정성이 의문시 됩니다.

  그 대신 당신을 은유적으로 부르셨습니다. 병자를 위한 의사로, 잔칫상에 초대하는 사자로, 양떼를 돌보는 목자로, 건축가로, 씨 뿌리는 사람으로, 농부로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아주 독특한 호칭으로 부르셨습니다. 결국 메시아(그리스도)라는 명칭은 남이 예수를 지칭할 때 사용된 호칭이고, 사람의 아들이란 명칭이 스스로 부르신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당신을 메시아라 부르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메시아라는 호칭에는 사실 상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 ‘기름부음받은자’라는 뜻에서 나온 명사로서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처음으로 기름 붓는 동작은 야곱이 베델에서 베고 잔 돌멩이를 축성할 때 기름 부었다고 나옵니다. 그 뒤로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성별할 필요가 있을 때 기름을 부어 축성하였습니다. 사람에게 기름 부어 축성하는 것은 탈출기 28,41절에서 모세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기름 부어 사제로 삼은 것이 시초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고 똑같이 다윗에게도 기름 부어 왕으로 삼는 것이 메시아라는 호칭이 시작된 유래입니다. 그 후에 대사제를 세울 때도 기름을 부어 메시아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 시절에는 왕과 대사제가 사라지자 메시아라는 호칭을 부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2 이사야가 북방의 페르시아 왕인 키루스에게 메시아라는 호칭을 과감히 붙입니다. 자신들을 바빌론 압제에서 해방하고 약속의 땅으로 귀환을 선사할 인물로 보았기에 그렇게 불렀습니다. 심지어 구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백성의 목자(히브리어;로이)라는 존칭을 키루스에게 붙이기까지 합니다.

  메시아라는 명칭에는 이렇게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킬 인사라는 이미지가 깊이 새겨있습니다. 그의 인격이 거룩해서라기보다는 지도자로서 능력을 지녔다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시절에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메시아는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줄 지도자라는 개념이 확고부동했습니다. 한번 깊이 새겨진 이미지는 여간해서는 바뀌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부활 이후 교회 공동체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난해한 명칭보다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이방인들에게 쉽게 접근할 것이라는 사목적 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 불렀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다윗의 자손 즉, 다윗의 가업을 이은 후손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에 제동을 거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학자들이 간과한 시편 110편, 다윗의 시를 실례로 들며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율법학자들의 지식이 얼마나 아전인수 격이며 오류에 빠지기 쉬운지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근거를 드는 대목은 사무엘 하 7,12-14절 예언자 나탄의 예언 내용입니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그는 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을 짓고, 나는 그 나라의 왕좌를 영원히 튼튼하게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죽자 곧바로 왕국은 분열되었고 몇 세대 후에 바빌론 유배와 같은 수모와 이민족의 통치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되실 분은 정치적 통치자, 메시아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예언의 본래 내용은 하느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고서 그 의미를 충실하게 지키며 하느님의 뜻을 세상에 펼 분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성령에 이끌려 나탄 예언자의 말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 깊은 의미를 자기도 모르게 노래로 부른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구약의 약속을 정확하게 해석하시며 정정해 주시는 예수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확실한 사명의식을 지니신 분이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지혜 자체이신 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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