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안의 삼위일체 실현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07 조회수744 추천수8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삼위일체 대축일 - 내 안의 삼위일체 실현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이 완전히는 이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신비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은 자신이 판 구덩이에 바닷물을 모두 채우려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옛 성인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세 잎 클로버로 설명하려 하였지만 이는 너무 단순한 것이었습니다. 세 분이 한 분이 되시는 신비는 바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신비입니다. 세 분은 사랑으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를 이해하게 되면 사랑이 무엇인지 더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도 이해할 수 없을뿐더러 죽기까지 사랑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완전한 사랑에 도달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완전한 사랑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듯이 삼위일체 신비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입니다.

 

저는 삼위일체를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찾는 중에 좋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기름등잔입니다. 등잔에 기름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는 심지가 꽂혀있습니다. 그러나 이 둘만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등잔은 불을 밝히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심지만 따로 떼어내서 불을 붙이면 심지는 타서 없어져버릴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름에 바로 불을 붙일 수도 없습니다. 심지는 기름에 담가져있어야 하고 그 때 불을 붙이면 비로소 기름과 심지는 불 속에서 하나가 됩니다. 기름은 불을 밝히는 원천인 아버지 하느님이고 심지는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성자이시며 불은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성령님이십니다.

물론 이것도 그럭저럭 세 분이 하나가 되는 것을 설명해 줄 수는 있지만 우리 삶과 연결해서 삼위일체를 설명하기에는 충분치 못합니다.

 

삼위일체의 가장 완전한 모델은 인간 자신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고 하십니다. 즉,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는 신비가 바로 사랑이고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완전한 삼위일체의 모델이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남자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상대가 있어야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은 사랑할 상대, 즉 여자가 필요합니다. 성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자는 여자에게 주고 여자는 받아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아버지도 당신의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그래야만 사랑이 완성되고 온전한 사랑의 하느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없는 남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성자가 없는 성부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성부께서 성자께 모든 것을 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성자께서 계시지 않거나 아버지께서 주시는 모든 것을 받으시지 않는다면, 즉 여자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남자로서의 성부 또한 존재 가치를 잃는 것입니다. 성부께서 성자를 나으셨지만 사실 성부께서 아버지가 되시는 것은 아드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 모든 사랑을 아들에게 주십니다. 사랑 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십니다. 모든 것을 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모든 것’이 바로 ‘성령님’임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은 곧 하느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셨다.” (요한 3, 34-35)

즉, 성령님은 당신 안에 모든 사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계신 것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본질입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그 본질도 한 분만이 지니고 계셔야합니다. 아버지는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그 본질을 지니고 계셨지만 성령님께 그 본질들을 주시며 아들에게 전달해 주실 것을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아버지께 순종하여 아들에게 당신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쏟아부어주십니다. 이렇게 아들은 참으로 신적 본질을 취하셔서 ‘하느님’이 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와 성령님은 다시 이름만 지닌 채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가장 가난한 분들이 되십니다.

그래서 아들은 다시 성령님께 당신의 신적 본질인 사랑을 온전히 돌려주시고 아버지께 되돌려 보내십니다. 이렇게 아들은 다시 온전히 자신을 비우셔서 죽으시고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를 살리십니다.

 

이런 “모든 것을 주고받는 과정”은 구원역사 안에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아들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신적 본질로 하느님의 지위를 누리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세상에 내려가 한 인간이 되라고 하십니다. 아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에 내려와 한 인간이 되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필립 2,6-7)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그렇게 낮아지고 가난해 진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성령님을 보내셔서 하느님의 이름을 되돌려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 3,16-17)

그러나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당신의 성령을 돌려드립니다. 이것에 바로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입니다.

“‘아버지, 당신의 손에 제 ‘영’을 맡깁니다.’ 그리고는 영을 보내셨다. (숨을 거두셨다)” (루카 23,46)

필립비서는 이렇게 죽기까지 순종하여 다시 모든 것을 아버지께 돌려보내셔서 돌아가신 당신의 아들에게 아버지께서 다시 영광을 돌려 준 것을 이렇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필립 2,7-11)

다시 영광을 받는 이 사건이 바로 부활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을 입고 다시 부활하여 참 하느님이 되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곧 성령님입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성령님을 사이에 놓고 서로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아주 합당한 예는 아니지만, 둘이 탁구를 칠 때 공을 서로에게 보내면서 그 공을 중심으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을 상상하시면 좀 더 쉬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모든 것의 주인이고 시작이시고 아들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순종하여 자신을 비워 성령님을 모실 공간은 마련하십니다. 비록 아들이 아버지께 낮아지지만 결국 아버지의 사랑은 아들을 당신과 똑 같은 하느님으로 만드십니다.

 

아드님은 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우리와 똑 같이 되풀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즉, 우리 각자도 ‘영혼-영-육체’ (1테살 5,23 참조)로 삼위일체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 영 안에 성령님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영혼과 육체는 서로 어긋나고 분리되고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죄가 바로 인간 안에서의 삼위일체를 깨지게 만든 것인데, 예수님은 먼저 ‘피’로써 죄를 씻게 하셨고 ‘물’로써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간이 다시 하느님의 모상대로 살아가도록 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이 ‘피와 물’이 신랑으로서 당신의 인성과 신성 모두를 인간에게 주시는 것을 상징합니다. 또한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전부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받으실 수 있도록 겸손하고 가난하셨던 유일한 분이 ‘성모님’이고 그 분만이 참다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그 순종과 믿음에 동참하면서 교회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부인 우리들은 신랑인 그리스도께 죽기까지 순종하며 자신을 비우고 그렇게 자신을 낮추는 우리에게 신랑인 예수님은 성령을 온전히 부어주십니다. 이것이 성령강림입니다. 성령강림으로 우리는 교회의 일원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룹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우리의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

이것만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남자와 여자도 서로에게 모든 것을 줌으로써 한 몸을 이루고 그렇게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자와 여자로 되어 있듯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온전히 사랑할 줄 모른다면 세상 어떤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삼위일체의 사랑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실현되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창조 때부터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었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이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사랑의 모델을 우리도 똑 같이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죄는 이 삼위일체 사랑을 방해합니다. 원죄 없으신 성모님만이 온전히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실 줄 아셨습니다. 우리도 하느님 삼위일체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또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성모님을 본받아 자신을 비우는 겸손과 순종으로 자신을 정화하고 그 깨끗한 성전을 성령님으로 가득 채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어떤 누구도 자신 안에 삼위일체의 신비를 되살리지 않는다면 참다운 사랑과 구원은 체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