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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체투지의 고행 <과> 십자가의 사랑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1 조회수420 추천수3 반대(0) 신고
언젠가 언뜻 본 적이 있다. 중세 때 일인가 싶다. 그 때는 수도원에서 자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 고통에 동참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편태''를 자주 사용하여 수도했다고 한다. 성인들 중에서도 이런 ''편태의 고통''을 통한 하나의 수도과정으로 삼았던 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 시대에서는 흔한 일이었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의아하게 생각 되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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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 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가복음서 14, 26 - 27>
 
"중세 때 수도자들 중 어떤 이들은 몸을 미워하여 편태를 가한다든가, 극기와 절제를 통해 육신을 가혹하게 다루었다고 한다. 육신과 세속과 마귀를 삼구(三仇)라 하여 미워하고 피하라 하심 때문이었다. 부와 명예를 미워하고, 자신의 부족함과 어리석음을 미워하고, 자기 내면의 성정을 미워하는 등 덕에 나아가기 위해 스스로 미워하는 마음을 갖으라 하심은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보다 더 어려운 가르침이라 생각된다."  <이석재 신부님 강론에서, ''자기를 미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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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태''는 수도자들이 수행하는 일종의 ''고행''의 수도방식인데 오늘날에는 그런 ''편태''를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도자들이 ''편태''를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종교에서 수도승들이 수행하는 한 방법인 ''오체투지''에 함께 편승하는 듯하다.  
 
"육신을 가혹하게 다룸으로써"  육신의 온갖 탐욕으로부터 극기하는 이유는 우선은 자신을 버리고(비우고), 자신을 가장 낮춤으로써 겸손한 영혼이 되어 결코 사리사욕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마음의 다짐에서 출발하는 자기 수행의 방법(기법)이 ''오체투지''이다. 그 과정에서는 어떤 깊은 영성을 이루게 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더 어려운 일임은 분명하다고 본다. 자신을 미워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을 비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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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뭔가 아쉬운 점이 남는다.
 
''자신을 비우겠다''고 해서 다른 종교의 수행방법(기법)을 빌리는 것이 마음에 선뜻 다가오지 못한다.
''자신을 비우겠다''는 것이 도리어 자기 자신을 역습해 옴으로써 자아가 더 강해진 자신으로 채워질 것이다.
 
비워지고 대신에 채워지는 이 때의 자기 자신은 아마도 ''자신을 초월한 다른 자신''이다고 확신할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런 초월성이 내재해 있다고 애초부터 믿었기 때문에 얻어지는 결과물일 것이다. (뉴에이지)
불교, 힌두교 등이 그런 인간 스스로의 초월성에 근거하는 종교가 아닌가 한다. [사람 = 부처(예수)이다 등]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그런 식으로 수행하여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신 것은 아니다.
또한 그런 수행방식(기법)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사랑했던 것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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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은
내가 나를 비웠기 때문에 =>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에 힘을 얻는다.
 
따라서
나를 비워 =>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시어 (하느님의 사랑 :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분께서 내 안에 오시며 => 그분이, 나를 비우게 하시는 것이다. (은총의 힘)
 
 
 
 
세례자 요한은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그분께서는 크지셔야 한다"
 
그렇다.
먼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오시고 => 따라서 내 안에 나는 작아지고, 그분께서는 커지셔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성심,
그리스도의 마음(은총)으로 채워지면 => 나를(자신) 비우게 되는 것이다.
 
비워서 - 채우는게 아니라 (인간의 능력)
채워서 - 평생 ''비워 나가는'' 것이다. (하느님의 능력 +  인간의 노력)
 
 
 
 
그리스도께서 /  내 안에 오신다 = ''성체성사''와 같다.
생명의 말씀(그리스도)을 받아들이고 + 생명의 성체(그리스도)를 모시는 마음에 따라
 
그리스도 /  그분(말씀)대로 자기를 내어 주는 것(성체)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자기를 비워 나가게 되어지며 또한 그것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자신의 육신과 투쟁하는 고행이 ㅡ 십자가의 생명 길이 아니라
자신의 육신을 내어주는 사랑이 ㅡ 십자가의 생명 길인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 =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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