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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로의 아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1 조회수459 추천수4 반대(0) 신고
 
 

위로의 아들 - 윤경재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마태10,7-13)

 

  오늘은 성 바르나바 축일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키프로스 출신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사도11,24)라고 쓸 정도로 인정과 칭찬을 받은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그의 선한 언행을 보고 사도들이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을 정도입니다. 위로의 아들, 바르나바는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공동체에 들어왔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밭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봉헌할 정도로 강한 신심을 지녔습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을 직접 뵌 제자는 아니었지만, 사도들은 그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였습니다. 사도 바오로와 함께 전도 여행을 다니며 이방 지역과 안티오키아에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였습니다. 그 결과 역사상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생겨났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과 철저한 무소유를 실천한 사도였습니다. 갓 입교한 사도 바오로에게 큰 신앙적 표양을 보여준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유대 지방에 큰 기근이 들자 앞장서서 구호품을 모으고 전달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솔선수범하는 행적과 인품에 감동을 받았기에 가능했습니다.

  위로는 이처럼 상대방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한 공동체에서 생활할 정도가 되어야 실제적 효과를 내는 법입니다. 입에 발린 미사여구로는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는 무너진 교회를 일으켜 세우라는 소명을 듣고 중세기에 쓰러져가는 교회를 재건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유산과 재산을 포기한 상태였으므로 수중에 돈 한 푼 없었습니다. 그는 돈의 위력으로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가난한 영성을 실천하면서 몸소 탁발하고 나병환자 등 병자를 돌보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교회 공동체에 복음 정신을 회복시켰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교회는 그에게 평화의 사도라는 명예로운 존칭을 붙여 기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복음을 선포할 제자들과 교회에게 지침으로 내어 주신 가르침은 정말 간단합니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보다 더 가난하게 되어 상대방이 자선을 베풀어 주어야 할 대상으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여행에 꼭 필요한 재물은 주님께서는 마련하겠다는 뜻입니다.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성 프란체스코는 주님께서 마련하신다는 생각을 ‘뽀르치운쿨라(작은 몫)’라는 말에서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친 형제들에게 특별히 최소한의 땅을 허용하신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것이 없다는 위로의 말이기도 했습니다.

  바르나바와 프란체스코 성인께서는 예수님의 삶을 제대로 추종하면서 사신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기쁨과 희망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이분들의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는 삶이었다고 고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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