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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7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5 조회수43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11주일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이슬람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표현되는 절대적인 복수심과 전쟁도 불사하며 무차별적으로 종교를 전파한다는 의미인 '한 손에 코란, 한 손에는 칼'이 거의 전부였습니다. 저는 코란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기록된 줄로 알았으나 우리 성경에 기록된 사실을 오늘 복음을 처음 접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던 것은 어린 학창시절부터 이슬람교에 대한 배타적인 교육을 받아온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 새로운 해석을 해 주셨으므로 이 성경 구절을 문자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수많은 성경 구절 중에서 여섯 가지만 예를 들어서 알려주시고 계시므로 나머지 내용들도 이처럼 잘못 알고 있는 내용들이 무수히 많다는 가르침이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이에 대하여 고민을 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 바로 복음으로 생각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이 말씀과 충돌하는 구약의 모든 말씀들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로 이미 파기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선포하신 복음을 실천하면 우리는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구약을 제대로 해석하면 예수님처럼 해석하겠지만 예수님처럼 바르게 해석할 능력도 없고 또 예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방법을 알려주셨으나 이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구약까지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라고 말씀하셨으나 이 말씀에 대하여 어느 글에서 읽은 기억에 의하면 왼손잡이가 아니면 상대편의 오른뺨을 먼저 때릴 수 없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상대편의 왼뺨을 먼저 칠 수밖에 없으며 오른뺨을 먼저 때리려면 손등으로 때려야만 가능하다며 이런 이유를 들어서 새로운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 해석에는 공감하지 못하여 지금은 기억조차 할 수 없지만 성경을 이렇게 꼼꼼히 살펴본 점에 대하여는 존경스럽기도 하고 배울 점이 많다는 그런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오늘 말씀대로 우리가 실천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참으로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두가 이렇게 먼저 양보하면 세상에는 그 어떤 시시비비도, 그 어떤 다툼도 있을 수 없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늘 다툼이 생겨서 법정으로 비화되고 크게는 국가 간에 전쟁이 반발하여 이 지구상에는 총성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고 가셨지만 오늘 복음을 실천하지 못하면 평화는 한낱 구호에 불과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내가 먼저 양보하는 경우는 없고 모두가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남북한의 문제도 그동안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였다고 비난하여 오늘 가르침과는 전혀 다른 상호호혜주의를 강조하고 있으므로 지금은 새로운 긴장관계가 조성되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상호 호혜주의는 사실 강자의 논리며 강자가 열개를 주면 약자는 하나만 주는 것이 공정한 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자가 열개를 주어도 가진 것이 없는 약자는 한개도 줄 수 없는 형편이면 한개도 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그 어떤 대가를 치룰 수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이를 믿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우리 신앙을 흔히들 믿음의 종교라 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실천하여야만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복음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며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의 전파이며 교회에 등록된 신자의 숫자만을 늘리는 것이 복음의 전파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은 무조건 우리가 손해를 봐야 한다고 하셨으므로 악인이 이익을 보는 것은 하느님만이 그 잘잘못을 판단하여 정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하여 나와 다르면 정죄하려고 하므로 세상이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의 예언자 소명은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판단하여 사람이기에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위정자들에게,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뜻인 성경 말씀을 알리는 것이며 불의를 정죄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불행했던 역사는 모두가 교회가 주체가 되어 정죄하려고 했기 때문에 발생하였습니다. 교회가 주체가 되어 그 누구를 정죄하는 것은 오늘 복음에도 어긋나므로 우리 교회는 예언자 소명을 다 하되 결코 폭력을 수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폭력을 수반한 남미의 해방신학과 예언자 소명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며 예언자 소명은 이렇듯 우리 사회에 복음을 전파하는 것임을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성체 성혈 대축일'의 강론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통에서 태어나신 것은 짐승 같은 사람들에게 먹이 감이 되기 위해서 오셨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실제로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먹히고 계시므로 ‘이를 기억하여 행하여라.’ 하신 당부 말씀처럼 우리도 남에게 먹혀야 하고 성체성사로 인한 성변화는 이처럼 남을 위해서 먹이 감이 되는 것이라는 귀한 강론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변화를 하지 않으면 이에는 이로, 더 나아가 정의의 이름으로 응징하려고 하고, 오른뺨을 치면 다른 뺨은커녕 상대편에게 그대로 되갚음을 하려고 하고, 내 속옷을 주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겉옷까지 빼앗으려 하고, 천 걸음을 동행하기는커녕 한걸음도 동행하지 않으려고 하고, 달라고 하는 자나 꾸려고 하는 자를 물리치는 것은 물론 주님의 말씀을 알려주는 사람도 물리치려고 할 것입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보다 지금은 얼마만큼 변화가 생겼는지 제 자신을 반성하면 정의의 이름으로 악을 응징하려는 이런 마음은 오히려 더 크게 자라난 것 같습니다. 이는 성체로 제 자신이 변화하는 속도보다 제 자신을 나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제반 여건의 변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 사회가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특히 소외된 자에 대한 배려와 인권문제 그리고 남북관계가 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는 오늘 말씀을 우리 교회가 널리 알려서 복음 전파의 제 사명을 다해주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도에 응답하시여 오늘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시고 이어서 용산 참사현장에서 시국 미사를 봉헌하시는 우리의 사제님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먹이 감이 되지 않으면 실천할 수 없는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성체성사로 성변화가 되지 않고서는
저희가 사람들의 먹이 감이 되지 않고서는
실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늘 성령님이 함께 하시여
매일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변화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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