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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17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9 조회수424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 성심 대축일]

<군사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37

31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32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33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34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35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6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37 또 다른 성경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이고 특별히 오늘을 [예수 성심 대축일]로 정하여 이를 기념하는 미사를 봉헌하므로 오늘 복음이 선정된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월, 화, 수요일 내리 3일간을 용산 참사현장의 추도미사에 참례하였기에 요즘 복음을 묵상을 할 때에는 용산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 사제 분들께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며 그곳을 지켜왔기에 잊혀지지 않고 나날이 우리 사회의 관심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제는 왜 천주교에서 참사현장을 독점하느냐는 개신교의 일부 목소리도 있어서 매 목요일은 개신교에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유족과 합의하여 150일째 되는 어제는 개신교 목사들이 추도 예배를 드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제 추도예배에서 설교내용을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교회는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바로 순수한 교회입니다. 예배는 건물 안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드리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정말 순수한 예배입니다. 설교는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 신도들을 겁주고 헌금을 얻어내는 게 아닙니다.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듣는 것이 설교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여기 용산에 계십니다. 여기가 순수한 교회이며 이 자리가 순수한 예배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건물 자랑, (신도)숫자 자랑, 돈 자랑, 거짓 축복 그만하라" 이런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우리 교회에도 많이 계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가톨릭뿐만 아니라 개신교는 물론 다른 종교에서도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그들과 함께 하여 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은 바로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예수 성심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말씀은 아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신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예수 성심을 기억하여 용산을 찾는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기를 소원하며 오늘 묵상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셨으며 그 구원의 방법으로는 인류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길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으므로 하느님의 뜻인 자비와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셨지만 율법으로 하느님을 잘못 섬기고 있는 자들은 더 이상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도록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 질을 하였고 죽음을 확인하고도 확인 사살까지 서슴지 않는 잔인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함께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사람의 강도는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다리를 부러뜨렸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죽음을 확인하였음에도 또다시 창으로 찌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복음에서의 예수님의 경우처럼 죽은 자를 또 죽이는 바로 이 점을 오늘의 우리 현실과 비교하여 묵상하였지만 이에 대한 묵상 내용은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복음에서 이런 사실을 찾아서 묵상해야 한다는 생각만은 함께 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현실에서 이와 같은 경우를 아주 가깝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확인 사살까지 하였음에도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그 뜻을 이어가는 우리 교회가 생겨났듯이 어둠의 세력에게 짓밟힌 숭고한 많은 가치들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병사는 론지누스로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 후에 회심하여 성인의 반열에 오르셨습니다. 바티간 대성당의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네 분의 대형 성인 상이 봉헌되어 있으며 네 성인 중에서 창을 들고 계신 분이 론지누스 성인입니다. 예수님을 찌른 창을 성창이라 하며 이 창을 가진 사람은 세상을 정복한다는 속설 때문에 1차 십자군 전쟁 때에는 이 창을 찾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는 그런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장례 풍습은 오늘 복음에 의하면 안식일에는 장례를 치루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느 집에 문상을 간 적이 있는데 4일장을 치른다고 하여 3일장이나 5일장에 익숙한 저는 의아하여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매제가 목사여서 주일에 장례를 치루는 것을 반대하여 원만한 장례를 위하여 4일장을 치르기로 하였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매제인 목사가 주일에 장례를 치루는 것을 반대한 이유가 주일 예배에 대한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그 교단에는 그런 교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장례를 당일로 치룬 이유는 오늘 복음에서는 안식일과 파스카 축제일을 그 이유로 들고 있지만 그보다는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신명 21,23)는 그들의 율법에 따른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것으로, 이를 우리 신앙으로 믿고 있지만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죄인으로 처형한 것이므로 당일로 장례를 치러야 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이 죄를 지었다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그 다음 날은 안식일이고 파스카 축제일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을 더 중시하여 당일에 장례를 치룬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 내용은 4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서에만 유일하게 기록된 것이며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라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이 이루어 진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라면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표현이 없어도 기자가 의도한 바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창으로 찌른 자국에서 피만 흘러나왔다면 사실적인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물까지 흘러나왔다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대하여 오늘 새롭게 떠오르는 묵상은 예수님의 피는, 성혈은 성체성사이며 물은 세례성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이를 전파하는 교회에서 우리 모두는 죄를 씻는 세례를 받고 성체성사로 예수님처럼 변화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 오늘 복음입니다. 죽은 당신의 몸을 창으로 찌르고 있지만 오히려 그들을 위해 세례를 주시고, 그들을 위해 당신의 피를 흘리시며 성변화를 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죽어서까지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이며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신 예수님의 성심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룬 가장 큰 기적은 형틀의 십자가를 사랑의 십자가로 만든 기적입니다. 그 기적은 세세대대로 이어져야 하고 지구촌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소명을 다하고 있는지를 반성해야 하고 저희들도 진실한 마음으로 이에 동참하고 있는지를 반성하는 것이 [예수 성심 대축일]을 참되게 기념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예수님의 뜻을 거역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론지누스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론지누스가 회개하여 성인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잘못된 우리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성체성사를 통하여, '이를 기억하여 행하여라.' 하신 말씀을 늘 기억하여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을 죽인 론지누스의 창이 사랑의 성창이 되어 온 세상에 사랑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우리 교회를 언제나 바르게 지켜주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죽어서까지 창에 찔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습이 바로 이처럼 죽은 자를 또다시 창으로 찌르고 있습니다.
살겠다고 올라간 망루가 죽음의 망루가 되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들을 테러범으로, 방화범으로 또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테러범이기 때문에 어떠한 온정도 베풀 수 없다고 합니다.
하여 151일째 되는 오늘까지 장례조차 치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이 땅의 그 많은 십자가가 무색하지 않도록 자비의 성령님을 보내주시옵소!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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