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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 20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19 조회수813 추천수17 반대(0) 신고
 
 

6월 20일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 루카 2,41-51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걱정이 밀물처럼>


    인파가 들끓는 놀이공원이나 혼잡한 길거리에서 잠시 한 눈 파는 사이에 어린 자녀들을 놓쳐 고생해본 기억이 없으십니까? 그 순간, 부모님들의 심정은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지요. 이 녀석 혹시라도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유괴범에게 끌려간 것은 아닌가?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다 영영 못 찾는 것을 아닌가? 초초해짐에 따라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나중에는 욕까지 저절로 입에서 나옵니다.


   저 역시 놀이공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따로 떨어진 한 아이를 찾느라 그 넓은 공원 전체를 3시간 동안이나 샅샅이 찾아 헤맨 적이 있습니다. 화가 나다 못해 나중에는 아이들 표현대로 ‘꼭지’가 다 돌더군요.


   또 한 번은 법정 보호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은 몇몇 아이들과 PC방에 놀러 갔습니다. 출입문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신부님,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하더군요.


   평소 같았으면, 다른 아이 같았으면, “그래, 나도 같이 가자”라고 하며 화장실 안까지 따라 갔을텐데, 워낙 신뢰심이 가는 ‘품질 좋은’ 아이였기에 “그래, 다녀와라. 째면 안된다”고 그랬습니다.


   아이는 웃으면서 “신부님도 참, 제가 왜 째요?”하면서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30초, 1분, 2분이 지나도 아이가 화장실에서 안 나오는 것입니다. 혹시? 하면서 화장실로 달려갔었는데, 이미 늦었습니다. 밖으로 난 화장실 창문을 통해 아이는 이미 자유의 몸이 되어 멀리 멀리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내려다보니 꽤 까마득한 높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뛰어내린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배신감, 모멸감, 허탈함은 아직도 손에 잡힐 듯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부모님도 저 못지않은 체험을 하십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소년 예수와 함께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났습니다.


   명절기간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마리아와 요셉은 소년 예수를 놓치게 됩니다. ‘아마도 친척들이나 동네사람들과 함께 돌아오겠지?’하고 하룻길을 걸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순례자들은 또래의 다른 순례자와 더불어 하나의 큰 카라반(그룹)을 이루어 여행하곤 했습니다.


   12살 정도의 소년이었다면 부모와 떨어져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함께 여행을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셉은 하루 온 종일을 아무 염려 없이 여행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 하루가 지나서야 마리아와 요셉은 일행 중에 소년 예수가 없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깜짝 놀란 마리아와 요셉은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겠습니다. 혹시 이집트 상인들의 꼬임에 넘어가 머나먼 나라까지 노예로 팔려가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마리아와 요셉은 이곳저곳 기웃기웃,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며 예수살렘을 향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 것입니다.


   침식을 잊고 사흘 밤낮을 헤매 다닌 끝에 겨우 소년 예수를 찾게 된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을 되찾았다는 기쁨도 컸지만, 태연히 성전에 앉아있는 소년 예수를 보고 있노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소년 예수에게 힐난조로 말합니다. “애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부모된 도리로서 어린 자녀가 행방불명되었는데, 아이를 찾아 헤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소년 예수는 당돌하게도 이렇게 응대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소년 예수의 이 답변은 너무도 심오한 답변이요, 영적인 답변이자 메시아로서의 답변이었기에 마리아와 요셉은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합니다.


   여기서 소년 예수의 답변은 자신과 부모와의 단절을 암시합니다. 언젠가 소년 예수는 지상의 아버지 집을 떠날 것을 미리 암시합니다. 언젠가 인간 예수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육신의 굴레를 벗고, 혈육을 떨치고, 더 큰 세계로 나아갈 것을 예표합니다.


   오늘 우리는 마리아의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마리아는 아들 예수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으신 분입니다.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이웃들로부터 오해도 엄청 받았습니다. 인간적 아쉬움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아들 예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때 마다 마리아는 인간적 섭섭함과 아쉬움을 접습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찾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낮춥니다.


   그때 마다 마리아는 수시로 떠오르는 인간적 욕구를 접었습니다. 매일 사사로운 감정을 떨치고 매일 일어섰습니다. 매일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 매일 새 출발했습니다. 이런 마리아였기에 그를 두고 참 신앙인, 신앙인의 모범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가톨릭성가 240번 / 복되신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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