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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1 조회수79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2주일 -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린다 새퍼딘이 지은 [두려움이 나를 망친다]는 책에 두려움 때문에 온전한 자신의 삶을 찾지 못하는 제이크의 예가 나옵니다.

그는 현제 50대 초반이고 젊은 시절에 두려움으로 살았던 것을 후회하며 느지막이 자신의 삶을 바꾸어보려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제이크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 있는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좋은 교육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 인생의 결정적 기로에 섰을 때 기타리스트로 성공하는 것에 자신도 없고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결국 그는 스물두 살 때 간호보조원으로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그는 음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음악가라는 핑계로 술집이나 식당에서 연주하며 작은 돈을 받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그런 실패한 삶을 살기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음악 자체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직업에서뿐만 아니라 이성과의 교제에서도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음악으로 성공하는 것이 자신이 없고 실패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처럼 여자를 만나서 상처 받는 것이 두려웠고 자신의 구애가 거절당하는 것을 원치 않아 아예 이성교제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50대가 된 것입니다.

물론 지금부터라도 두려움을 극복하면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삶은 누구도 되돌려 줄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인생 자체를 망칩니다.

 

두려워하니까 사람이라고 합니다. 물론 사람은 무언가 두려워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제이크의 예에서도 보듯이 두려움은 사람을 제대로 살게 하지는 못합니다.

두려움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처음으로 느낀 감정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고 두려워 숨게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부산 외가에 갔을 때 다음 날 아침에 어머니가 사라진 것을 알고 꽤 오랜 시간 울며 어머니를 찾아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외가가 목욕탕을 하고 있어서 어머니가 목욕을 하고 있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자 나를 버리고 혼자 돌아간 줄 알았던 것입니다. 농담으로 전 날 나를 놔두고 가겠다는 이야기들을 했기 때문에 더 울었던 것입니다.

불안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은 나를 지켜 줄 하느님이 내 곁에 계시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있는 아이들은 천하무적입니다. 부모님이 받아주면 아무리 높은 곳에서도 두려움 없이 뛰어내립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보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제이크와 같이 자신 있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느껴서 불안하고 두려워지게 됩니다. 아무리 머리로 그 분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 생각해도 양심은 나를 죄인으로 심판하고 그래서 마치 고아처럼 혼자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만듭니다. 보호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무엇을 하더라도 두렵고 걱정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이 두려움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이야기가 수 없이 나옵니다. 저는 판관이었던 기드온과 이스라엘 첫 왕이었던 사울의 예를 들려고 합니다.

당시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지배를 당하던 때였습니다. 기드온도 가장 작은 가문의 힘없는 청년이었습니다. 기드온 사람들에게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몰래 밀 이삭을 포도주 틀에서 털고 있었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미디안 사람들로부터 구해내라고 합니다. 기드온은 절대 자신은 그럴 힘이 없다고 하며 야훼의 천사에게 정말로 자신이 선택된 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천사는 불을 바위에서 나오게 하여 기드온이 준비한 제물을 불사르게 하였습니다.

기드온이 군사를 모집하여 진을 쳤습니다. 기드온은 여전히 미덥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또 다른 징표를 보여 달라고 청합니다.

타작마당에 양털 한 뭉치를 펴 놓고 밤새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고 마당은 말라 있으면 미디안과 전쟁을 치루겠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해 주십니다. 기드온은 한 번 더 청합니다. 이번엔 반대로 양털에만 이슬이 내리지 않고 타작마당에 이슬이 내리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하느님은 그대로 해 주십니다.

믿음은 이렇게 작은 청원들을 주님께서 잘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 더 강해지게 됩니다.

이제 숫자적으로도 열세인 상황이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확신이 서니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하느님이 기드온을 시험합니다.

하느님은 기드온에게 두려워하는 군사들은 집으로 다 돌아가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랬더니 이만 이천 명이 집으로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느님은 아직도 숫자가 많다고 하시며 군사들을 개울가로 데려가 물을 먹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개처럼 혀로 물을 핥아먹는 사람을 한 편에 세우고 무릎을 꿇고 물을 들이키는 사람을 다른 한 편에 세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사람을 다 돌려보내라고 하니 남은 군사는 삼백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로 주님은 승리를 이끌어내십니다. 밤중에 삼백 명의 뿔나팔 소리와 단지를 깨는 소리에 메뚜기 떼처럼 평지를 덮고 있는 미디안 군사들은 그 소리에 놀라서 자신들끼리 서로 찔러 다 죽고 맙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하느님께서 뽑아 세운 첫 번째 왕이었던 사울은 자신의 교만으로 스스로 하느님을 저버립니다. 처음엔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어 위의 기드온처럼 적은 수로도 승승장구하였지만 하느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점점 더 두려운 일이 현실이 되게 됩니다.

한 번은 불레셋 군과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불레셋 군사의 숫자를 본 사울은 그만 겁에 질립니다. 그리고 군사들도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신이 사제가 아닌데도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 제사를 지내버립니다. 사울이 번제를 드리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를 꾸짖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변명합니다.

군인들은 하나 둘 도망치고 선생님은 정하신 때에 오지 않으시니 불레셋군은 믹마스에 집결해 있어 야훼의 노여움을 풀어 드리기도 전에 불레셋군이 길갈로 쳐내려 올 것 같아서 부득이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하느님은 사울을 완전히 떠나시고 다윗에게 새 왕권을 넘겨줄 것을 결심하십니다. 사실 저렇게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그래서 다윗을 두려워 한 나머지 그를 죽이려합니다. 마치 헤로데가 아기 예수님이 두려워 그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아기들을 모두 죽인 것과 같습니다. 또 유대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기 싫어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습니다. 두려움은 전혀 두렵지 않은 것에서도 두려움거리를 찾아내고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결국 스스로 비극을 맞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울은 마지막 죽을 때도 적군을 보며 겁에 질려 죽은 사무엘까지 무당을 통해 불러내서 도움을 청하지만 역시 그의 운명은 두려워하며 죽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렇게 칼에 찔려 죽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제자들을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직까지는 주님보다는 자신을 믿고 스스로 풍랑을 이겨보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호수에서만 살아온 베드로도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예수님께,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며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깨웁니다. 예수님은 단 한 마디로 호수를 잠잠하게 하시고 제자들에게 한 마디 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교만으로 곁에 있는 예수님을 찾을 줄 몰랐습니다. 우리도 그들처럼 힘들 때만 주님을 찾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사울처럼 찾아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인생을 망칩니다. 두려움은 나를 믿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것에서 옵니다. 내가 아무 힘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 분께 도움을 청할 겸손함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걱정하고 두려워한다면 스스로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하며 내 안에서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깨워 무엇이든 청합시다. 아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두려워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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