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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남북통일 기원 미사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1 조회수72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남북통일 기원 미사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어느 날 남북통일 기원미사 때 이런 강론을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통일이 되기 원하십니까? 먼저 옆의 형제들을 용서하십시오.”

사실 그분의 말씀은 우리의 정곡을 찌릅니다. 가족 간에 서로 미워하며 갈라지고, 이웃과 직장동료와 또 교회에서마저도 서로 갈라지면서 통일기원미사를 하면 뭐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먼저 우리부터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야 더 큰 용서와 일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는 하나 되는 방법으로 용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용서하는데 한계를 두지 말라고 하시며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하라고 하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으로부터 나도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 이것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정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의 죄를 용서해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지옥에 가면서까지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둘째는 상대를 눈물 흘리게 하기 위해서 자신은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미워하면 나만 손해라는 것입니다.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망가지는 방법을 택하기도 합니다. 잘해 오던 것도 다 포기하고 몸과 마음을 망가뜨립니다. 심지어 보복을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입니다. 처음에는 조금 양심의 가책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내 저런 사람과 헤어진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저런 사람과 헤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입니다. 헤어진 것도 가슴 아픈데 왜 자신까지 망치려고 합니까?

어떤 아이들은 부모에게 반항이라도 하듯이 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립니다. 성적이 떨어진 것을 비관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까지 고생시키는 부모님께 고통을 주기 위한 마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 하나의 보복인 것입니다. 자신과 부모와 친구들과 사회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보복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왜 영혼을 잃으면서까지 아픔을 주려고 하는 것일까요?

 

마지막으로 용서해야 하는 셋째 이유는 미워지는 것은 내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 것이랑 상대방을 미워하는 것이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 하겠지만 사실은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상대방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담은 자신이 죄 지은 핑계를 여자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받아먹은 것은 자신이었습니다. 여자는 그 핑계를 뱀에게 댔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본인이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자동적으로 다른 사람을 미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 미워진다면 그 사람보다도 자신의 죄가 무엇이 있나 먼저 살피고 하느님께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질지라도 또 다른 미워할 사람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세상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워하려면 무슨 트집을 잡아서든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나 그런 악한 면만을 본다는 뜻은 이미 자신이 악한 사람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꽃밭에 누가 똥을 싸놓고 갔습니다. 꿀벌과 똥파리가 동시에 그 꽃밭으로 달려갑니다. 꿀벌 눈에는 꽃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똥파리는 그 아름다운 꽃 속에 있는 더러운 똥만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달려갑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존재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점만 찾아서 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어둠 속에 있는 것이고 똥파리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고 조롱하고 침 뱉고 때리고 온갖 고통을 주는 인간들을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리셨고 그들의 죄를 대신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하시며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두 용서하고 그 사람들을 위해서 피를 흘리실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는 보통 인간이었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책은 “윈윈(win win) 정책”입니다. 둘 다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웅덩이에 물고기 두 마리가 살았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아 항상 다른 물고기를 미워했습니다. 어느 날 그 물고기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나머지 물고기도 죽고 말았습니다. 물이 오염되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미움은 결국 타인도 죽이고 자신도 죽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립니다. 마리아 고레띠라고 하는 성녀는 열 살밖에 안 되었는데 동네오빠로부터 수십 군데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그 청년은 소녀를 성추행하려다가 소녀가 결사적으로 반항하자 들어 올린 손바닥부터 시작하여 온 몸에 칼질을 해댔습니다. 이 소녀는 죽어가면서 그 청년을 용서한다고 말했고 자신과 함께 하느님나라에 들어가기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감옥에서도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은 마리아 고레띠가 감옥에 있는 그에게 나타나 그를 회개시켰습니다. 그는 깊이 회개하고 수도원에서 조용히 살다가 하느님나라로 갔습니다. 마리아 고레띠가 용서하지 못했다면 자신도 구원 못 받고 그 청년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용서는 둘 다 살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통일, 그것은 먼저 우리가 우리 이웃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 마음에서 모든 응어리를 없애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충만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나라에 통일을 주실 것입니다. 통일, 통일 외치기 이전에 먼저 우리 마음이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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