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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의 은총 ....... 김상조 신부님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2 조회수766 추천수7 반대(0) 신고

“일흔번씩 일곱 번 용서하여라.”

일흔 일곱 번 혹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면 무한한 용서를 의미한다.
또는 무조건적인 용서를 의미한다.
하지만 오늘 말씀 속에는 용서하기 위해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있다.
루카 17,4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드러나 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용서가 성립되기 위해 필요한 선행 조건은 용서를 청하는 행위다.
용서청함이 없는데 용서가 이루어질 순 없는 법이다.
야구경기에서 출루한 선수가 없는 한, 점수가 날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용서청하는 과정 속에는
그 보다 앞서 일어나야 할 또 다른 행위가 들어 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서를 청하는 것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고,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닫는 작업이 먼저 있어야 한다.
성찰이다.

용서받아야 할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용서청하는 행위가 일어나고,
그 다음 비로소 용서하고 용서받는 화해의 장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것이다.
나에게 용서받을 일이 있음을 깨닫는 것,
이것이 용서가 이루어지기 위한 가장 첫 걸음이다.

일흔 일곱 번씩 혹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는 무한한 용서의 행위 속에는
그 숫자만큼의 무한한 깨달음의 은총이 선행되어 있다는 것이다.
깨우침의 은총, 개선과 고침의 은총이 먼저 있고 나중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 용서인 것이다.
깨우침이 있으면 용서나 고침의 행위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일흔 일곱 번이나 혹은 일흔번식 일곱 번이라는 무한히 반복되는 용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잘못을 깨쳤으니 이제 개선되는 일만 남은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모두 ‘네 탓’이라고 책임을 떠 넘기고 있기 때문에 어떤 개선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재활원에 있을 때 최문식이라는 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잠들때까지 “엄마, 어머나”만 말하는 친구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코에서 콧물이 계속 났다.
겨울철이니 당연히 감기일 것이라 여기고 감기약을 먹여 보았집만 도저히 멈추지 않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엔 허옇든 콧물이 점점 누렇게 변해갔다.
그런데도 간호사는 감기니까 약 먹이면 괜찮다고만 한다.
간호사의 말을 무식하고 병원에 갔다. 처음엔 의사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니
이상하다 싶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콧 속에 5백원짜리 동전이 들어가 있었다.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평소에 코를 자주 파던 친구였으니 5백원짜리 동전을 가지고 놀다가 그걸 콧 속에 밀어넣어던 모양이다.
한번 들어간 동전이 기계로 빼내지 않는 이상 코를 후비면 후빌수록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갔던 것이고
그것이 콧 속에서 염증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동전을 제거하니 콧물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용서가 일어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한 것이다.
근본문제를 발견하는 작업이 가장 우선적이고 시급한 작업이다.
그것이 이루어진 순간 개선작업은 볼보듯 뻔한 것이다.
그냥 순리대로 개선되는 것이다.


사실 고장난 곳을 고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타이어 펑크가 난줄도 모르고 차를 몰다가 오일교환 하면서 정비사가 “펑크가 났네요!”하면
깜짝 놀라면서도 안도의 한숨을 쉬지 않는가!
고장난 라디오를 고치는 순간은 참으로 긴장된 순간이다.
수리가 완료된 순간 스피커를 통해 맑고 깨끗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누군가는 하느님과 우리 신앙을 라디오 주파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신앙생활은 세상 주파수가 아닌 하늘나라 주파수에 채널을 맞추는 것이라고.
용서의 은총은 그런 것이다.
지직 거리던 라디오가 순간 뻥하고 뚫려서 분명하게 들리는 것,
막혔던 곳을 뚫고 끊겼던 길을 다시 이어주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큰 은총인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발견하는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을 아는 순간 용서는 물 흐르듯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모아",
"두 사람이나 세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곳"이라는 말도 용서에 관계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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