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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2 조회수9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2주간 월요일 -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어느 날 나귀가 등에 짐을 잔뜩 지고 가다가 그만 개울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나귀는 허우적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때 개울을 건너던 개구리가 허우적거리는 나귀를 보며 소리쳤습니다.

“아, 시끄러워, 이 바보 같은 녀석아, 개울에 빠졌다고 왜 그리 호들갑이야. 날 봐, 난 너보다 힘도 없고 몸집도 엄청 작지만 그래도 헤엄쳐서 잘 건너잖아. 그렇게 소리 지를 시간에 헤엄을 치려고 노력을 해 봐.”

사람은 대부분 이 개구리처럼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것 다 못해도 내가 하나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남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그 판단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저도 어렸을 때 강냉이 장수 아저씨가 공짜로 강냉이를 나누어준다고 했을 때 빈손으로 나갔습니다. 그 아저씨를 그렇게 자비롭다고 판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내 자신이 자비롭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기준으로 그 아저씨가 내 손 가득히 강냉이를 주어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밥그릇부터 시작하여 큰 대야까지 가지고 나왔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들을 비웃었지만 그 아저씨는 각자 가져나온 그릇에다 강냉이를 하나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저는 겨우 손바닥에 조금만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각자 그 아저씨를 평가한 대로 되돌려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사람을 평가하지 말라고 하시며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심판하는 잣대로 하느님은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내가 남을 거짓말쟁이라고 심판했다면 하느님 앞에서 정말 완전히 거짓이 없는 한 나도 거짓말쟁이라고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나의 심판 기준으로 나를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완전하게 다른 사람에게 자비로울 수 있다면 내가 어떤 죄를 지었든 하느님도 나를 용서 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판단 잣대를 내가 버려서 하느님께서 나를 어떤 잣대로 심판해야 할지 모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잣대로 하느님만 나를 심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 잣대로 심판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판단은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터지기 몇 해 전, 오하이오주의 큰 농장에 한 초라한 소년이 찾아와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주인은 일손이 모자랄 때라 소년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3년 뒤 이 ‘머슴’이 자기 딸과 사귀는 것을 알고 내 쫓았습니다. 그로부터 30년 뒤 주인은 낡은 창고를 수리하다 그 소년의 짐을 발견하고 내용물을 살피던 중 소년의 이름이 제임스 A 가필드라는 것과 현직 20대 미합중국 대통령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농장 주인은 대통령 사위를 맞을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인들도 단점이 아주 많습니다. 노아도 술주정꾼이었고 모세는 말더듬이에 용기 없는 사람이었고 삼손은 호색가였으며, 다윗은 호색가에 살인자였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호색가에 우상 숭배자였으며 우리의 첫 교황님인 베드로는 하루에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사람이고 바오로도 교회의 박해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구원 역사의 큰 획을 그으신 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세우셨는데 우리가 어찌 그들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자는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노상강도의 이야기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란 이름은 ‘늘리는 자’란 뜻입니다. 그는 앗티카라는 지방에 살면서 자기 영지를 지나가는 나그네를 잡아 쇠 침대 위에 누이고 결박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자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몸을 잡아 늘여 침대 길이에 맞추고, 반대로 길이가 침대보다 길면 긴만큼 잘라버려 죽였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테세우스라는 영웅이 이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그가 여행자들에게 했던 방법과 똑같은 방법으로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라는 말은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융통성이 없다는 뜻의 관용구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 마음 안에 그런 침대가 있다면 빨리 버립시다. 언젠가 그 침대 위에 내가 누이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조: 한태환, 예화포커스)

 

형제 여러분, 서로 헐뜯지 마십시오. 자기 형제를 헐뜯거나 심판하는 사람은 율법을 헐뜯고 율법을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율법을 심판하면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심판자가 됩니다. 그러나 율법을 정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구원하실 수도 있고 멸망시키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이기에 이웃을 심판한단 말입니까?” (야고 4,11-12)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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