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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믿음의 사람"- 6.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6-22 조회수557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6.21 연중 제12주일
                                        
욥기38,1.8-11 2코린5,14-17 마르4,35-41

                                                              
 
 
 
"믿음의 사람"
 


믿음은 무슨 색깔일까요?
초록색깔입니다.
생명의 초록 나뭇잎들 색깔입니다.
생명의 나뭇잎들 초록색 짙어가는 예수성심성월 유월입니다.
 
땅속 깊이 뿌리 내린 나무들이기에
초록색 생명의 나뭇잎들입니다.
 
나뭇잎들 무성한 거목들을 대하면
믿음 좋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문득 생각나는 게 하느님께 내린 우리 믿음의 뿌리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믿음의 뿌리는 어느 상태인지요?

뿌리가 얕고 약하면
나뭇잎들 역시 가뭄에 시들기 쉽고 폭풍우에 견뎌낼 수 없듯이 우리 믿음의 뿌리 역시 얕고 약하면
삶에서 오는 온갖 시련들을 견뎌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내린 믿음의 뿌리가 깊고 튼튼해야
생명 충만한 삶에 안정과 평화요,
이 믿음의 뿌리가 얕고 약할 때
끊임없이 뒤따르는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방황입니다.

우리 삶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믿음의 인생 여정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공동체라는 배를 타고 인생바다를 항해하는 우리들 같습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우리 믿음은 하느님께 깊이 뿌리내려 가는지요.
 
계속 내적으로 깊어가는,
성장하고 성숙하는 믿음인가 묻는 것입니다.
 
인생 항해 여정에 믿음보다 더 귀한 보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첫째, 끊임없이 하느님을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은 하느님이시지 인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고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 계획과 다릅니다.
 
우리 인생 잘 들여다보면 모르는 것 천지입니다.
 
말 그대로 삶의 신비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 갈수록 저절로 겸손이요
하느님의 지식과 지혜를 찾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사실을 알뿐입니다.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부단한 회개와 하느님을 찾는 일입니다.
 
겸손히 무릎 꿇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루 중
하느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 지요?

기고만장했던 욥은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 회개합니다.
욥기를 통해
하느님은 만유의 주님이요 주인이심이 환히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폭풍우 속에서 욥에게 다그치며 말씀하십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그것이 모태에서 솟구쳐 나올 때,
  내가 구름을 그 옷으로,
  먹구름을 그 포대기로 삼을 때,
  내가 그 위에다 경계를 긋고,
  빗장과 대문을 세우며,
  여기까지는 와도 되지만 그 이상은 안 된다.
  너의 파도는 여기에서 멈추어야 한다,‘ 할 때에 말이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온통 하느님의 업적들로 가득한 세상임을 보게 됩니다.
 
말 그대로 온 세상이 하느님의 수중에 있으며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합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보지 못해도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를 보고 계십니다.
 
하느님 피해 도망칠 곳 이 세상 어디도 없습니다.
 
하느님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위태롭기 그지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니 하느님 공부보다 더 중요한 평생 공부도 없습니다.
 
이런 하느님을 깨달아 알아갈수록
믿음은 더욱 깊어지고 겸손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끊임없이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믿음 약함을 탓할 게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믿음입니다.
 
욥의 살아계신 주님과의 대화는
그가 얼마나 고통 중에 기도했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들 한 결 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전 신앙의 선배들은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대화의 기도를 바쳤는데
오늘의 우리는 왜 이런 주님을 못 만납니까?
 
순전히 기도가, 믿음이 부족한 탓입니다.
 
그 때 하느님이나 오늘의 하느님이나
똑같이 살아계신 주님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곁에 두고도
불안에 떠는 모습이 참 어처구니없어 보입니다만
바로 믿음 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거센 돌풍 중에도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의 믿음은 얼마나 대단하신지요.
 
이런 주님의 믿음을 닮아가는 것 역시 우리의 평생숙제입니다.
 
제자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거센 돌풍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얼이 빠져 죽을 지경이지만
즉시 주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그대로 살아계신 주님과 대화의 기도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즉시 주님의 응답입니다.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곧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 졌다 합니다.
 
이어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약함을 책하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애당초 타고난 믿음은 없습니다.
 
이런 일련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기적을 체험함으로 튼튼해진 제자들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여정 중에 계속 성장, 성숙하는 믿음이요,
믿음의 여정에 끊임없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깊은 믿음의 삶을 살려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게
저희 수도자들이 매일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한 살아계신 주님과의 끊임없는 만남이
마음과 감정의 파도를 잠잠케 하고 믿음을 튼튼히 하여
온각 시련의 돌풍 속에서도 안정과 평화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요셉수도공동체란 배가 22년 동안
이런저런 시련의 폭풍우 속에서도
지금까지 무사히 항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끊임없이 바쳤던 공동기도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들어 높여져 점점 주님을 닮아갑니다.
 
매일이 새 아침, 새날, 새 하늘, 새 땅, 새 사람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내가 다릅니다.
 
매일 새롭게 태어나 영원한 오늘을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늘 새로운 마음의 사람들, 영원한 젊은이들입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삶에도
결코 권태나 나태, 무기력함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 영성의 요체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이런 진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나,
그분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
주님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들, 모두가 새롭습니다.
 
생명과 빛, 희망으로 출렁이는,
찬미와 감사, 기쁨과 행복의 삶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지 살 줄 안다면 행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새롭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가 진정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공부에,
살아계신 주님과의 대화인 기도에,
또 새롭게 되는 데에
세상에 미사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참됨과 좋으심과 아름다움은
그대로 미사를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중
당신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우리의 믿음을 튼튼케 하시어
마음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고 새로운 하루를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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