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례력으로 주님 수난 성금요일, 퇴근 후 남편과 20개월 된 딸을 데
리고 용산참사 현장에 다녀왔다. 1월 20일 그곳은 아비규환이었을 것이다. 자
본이라는 마귀에 사로잡힌 이들이 엄동설한에 갈 곳 없는 철거민들을 벼랑으
로 내몰았고, 안타까운 여섯 목숨이 주님 곁으로 떠났다.
언론에서 전하는 뉴스를 보며 아파했는데, 한번은 꼭 그곳에 가야 할 것 같
아 추모미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유가족과 철거민, 그들의 외로운 길에 동
행을 자처한 이웃들이 참사의 상처가 뚜렷한 그 길 위에서 투쟁과 추모를 이
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도착했을 때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문정현 신부님의
인도로 십자가의 길 기도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거 현장 곳곳을 14처 삼아 이
어지는 기도. 절로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렀다. 호기심과 흥이 많은 딸
은 신부님과 참례자들의 ‘아멘’ 소리에 조막만한 손을 모아 ‘아-암-’ 하며 고
개를 숙이고, 성가가 나올 땐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세상이 마냥 신기
하고 재미있다는 듯 몸을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보니 웃음도 나왔지만 한편으
로는 마음이 무거웠다.
부자들의 하느님과 서민들의 하느님이 다르지 않을진대, 하느님은 어쩌다
고통 받는 서민들 앞에선 눈이 멀고 부자·권력자들에겐 물질을 축복해주는
물신(物神)이 되셨나. “ ‘나에게 주님, 주님 !’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아버
지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 날마다 기도와 묵상으로 돌아보며 경
계해야겠다. 소중한 아이들의 미래가 하느님 나라가 되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겠다.
김현정(양주 고암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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