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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 안의 돼지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1 조회수1,112 추천수18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13주간 수요일 - 내 안의 돼지들

 

 

 

성소의 길을 가는 사람치고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고, 또 무언가 내가 원해왔던 것들을 버리지 않고 그 길을 선택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포기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의 자유, 또 어떤 사람은 모성애나 부성애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는 결혼이었습니다. 저는 꽤나 결혼하고 싶었나봅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행복하기 위해서는 예쁜 여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다보면, ‘왜, 둘 다 선택할 수는 없을까?’라는 한탄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둘 다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주님의 뜻’과 그것에 반하는 ‘우상’들이 있을 뿐입니다. 여자가 우상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의 뜻이 내가 사제가 되는 것이라면 그 뜻 앞에서는 결혼하려고 하는 마음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우상이 되고 맙니다.

일 년의 지독한 고민 끝에 결혼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저를 좋아했다고 말했는지 모릅니다. (왜 그 전에 말하지 않고... ^ ^) 그렇게 신학생이 되었지만 이런 선택의 갈등은 이것이 시작에 불과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 앞에는 계속 ‘주님의 뜻’과 그 뜻에 반하는 ‘우상’이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가다라인들이 사는 지방으로 가십니다. 그 곳 입구에는 마귀 들린 사람이 있습니다. 마귀가 한둘도 아니고 군대로 들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마귀 들린 사람은 그 동네의 상황을 말해줍니다. 이 사람들 안에 수많은 마귀가 들어있듯이 그 동네 사람들도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증거는 바로 돼지를 키우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돼지는 모세의 법에 의해 부정한 동물로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보관이 힘들어 부패가 쉽게 되어 그것이 법으로 정해졌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과학으로 증명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돼지고기는 마늘이나 술과 같은 음식들처럼 사람의 정욕을 증가시킵니다. 그러니 구약에서는 아예 먹지 말라고 규정했던 것입니다. 지금 스님들이 고기와 술, 마늘 등과 같이 정욕을 증가시키는 음식을 먹지 않는 이유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그 동네는 아직 주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우상이 가득한 마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마을에도 당신의 생명을 전해 주시기 위해 들어가셨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들 자신들이 마귀에서 치유되기를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귀들 스스로 예수님께 달려 나와 자신들을 쫓아내시려거든 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하느님과 우상이 동시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 마을에 들어가셨으니 마귀는 사라져줘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귀 들린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습니다. 돼지는 부정함과 우상의 상징임으로 곧 마귀의 상징입니다. 마귀가 들어간 돼지들은 곧 낭떠러지로 떨어져 바다에 익사해 죽습니다.

바다의 심연이나 땅 속, 즉 밑으로 내려가는 곳은 곧 지옥을 상징합니다. 마귀들과 그 우상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종국에 도달할 목적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그 마을 사람들에게 마귀 들린 상태로 돼지들처럼 부정한 것들을 좋아하며 살지 말고 깨끗하게 치유되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느님인지 우상인지, 그들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의 선택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달려와 자신들의 마을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우상들을 모조리 잃게 될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느님보다는 우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깨끗해진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바다에 떨어져죽은 돼지들의 운명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또 하느님도 인간이 원하지 않으면 결코 그 사람 안에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안에도 아직까지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지 못하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시는데 십일조를 내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을 선택하게 한 내 안의 우상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용서하라고 하는데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도 역시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을 주님의 뜻보다 우선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모두 다 내 안의 우상들 때문인 것입니다.

즉, 내가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아직 돼지 몇 마리가 뛰어 다니고 있기 때문이고 나는 그 돼지들이 좋아서 그 쪽만은 주님께서 좀 오시지 말아 줬으면 하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같은 심정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행복하지 못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들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 속에서 약간의 지옥의 고통을 맛보며 살고 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내면 한 구석을 더 점령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선택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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