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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성과 신앙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3 조회수1,139 추천수15 반대(0) 신고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 토마스 사도 축일 - 이성과 신앙

 

 

 

얼마 전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로마가 배경이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로마에서 보는 것은 더 실감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빈치 코드’를 쓴 작가가 쓴 것이라 교회에 반대되는 내용이 또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믿음이 없는 한 과학자가 교회를 구하는 천사로 표현되고 교회의 성직자는 오히려 교회를 해하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로 표현한 것은 신앙인들에게 약간 거부감을 줄 수 있지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다빈치 코드와 마찬가지로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오류를 밝혀내게 되어 종교를 무너뜨리거나 적어도 종교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과학으로 종교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한 명의 과학자가 막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종교는 이들 앞에서 아무 힘도 없어 보입니다.

 

사실 우리 종교 역사 안에서도 과학과의 충돌은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갈릴레이를 교회에서 단죄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천동설을 주장하였지만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주장을 굽히지 않자 그를 가두고 주장을 철회할 때까지 감금하였습니다. 그러자 갈릴레이는 결국 교회의 뜻에 수긍하고 교회도 그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때는 교회가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하였었습니다.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자 과학은 매우 거센 반격을 해 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다윈이 진화론을 내세우자 창조론을 주장하는 교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성경 신학 안에서도 과학에서 어긋나는 내용이 너무 나오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태양과 달이 넷째 날 창조되었는데 어떻게 하루, 이틀을 셀 수 있었는지, 또 동생을 죽인 카인이 아담의 유일한 자식으로 남게 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민족이 벌써 존재하여 그를 해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손을 써 주시는지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모순되는 내용들이 수 없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축일을 맞는 토마스 사도는 우리에게 과학과 믿음이 결코 반대되는 성향의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토마사도의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보통 과학자나 건축가들이 쓰는 자를 들고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는 기술자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과학자에 가까운 정신으로 산 사람입니다.

물론 과학은 무엇이 증명이 되어야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고, 믿음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기에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보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토마스 사도와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토마스 사도만이 그 사도단과 함께 있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아무리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해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손을 상처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과학자들에겐 없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어 그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셨다는 것입니다.

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믿기 어렵지만 정말 ‘믿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증거를 보여주십니다. 사실 많은 수의 과학자들도 믿음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과학은 믿음에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믿으려는 마음’만 있다면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과학적으로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니다. 왜냐하면 과학도 결국은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가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사도가 다른 사도들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일주일동안 그 사도단을 떠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머뭅니다. 그만이 주님을 보지 못했다는 창피함도 있었겠지만 마음 안에는 주님께서 자신의 철옹성 같은 이성을 깨어버리기 위해 나타나 주시기를 희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믿음의 선물을 주십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해서, 생명체가 진화한다고 해서, 또 어떤 과학적인 발견이 된다고 해서 겁을 먹거나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처음으로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간 소련 사람이 우주에 나갔더니 하느님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처럼 과학으로 믿음을 없애려하는 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우스운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교회는 과학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과학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신학이나 학문을 통해서 신앙을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요즘 한국 천주교 신자가 늘어가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입니다. 주오일 근무를 하게 되자 남자들도 시간이 생겨 종교를 가지려하는데 그래도 가장 그들의 이성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가톨릭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믿음을 거부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물론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지금은 인공수정으로 처녀도 임신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인간도 그 정도 하는데 하물며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의 이성의 진보가 믿음을 저버리는 핑계가 되기도 하고 한편 믿음을 증가시키는 발판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성을 통하여 우리가 지니고 있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고 믿음을 더 증가시키려는 목적으로 나아가야하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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