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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06 조회수1,006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원요일
 
 
 
Courage, daughter!  Your faith has saved you.
(Mt.9.22) 
 
제1독서 창세기 28,10-22ㄱ
복음 마태오 9,18-26
 
 
한 방송국에서 성공한 사업가를 초대했습니다. 방청객들은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는지 질문을 쏟아 냈지요. 성공한 사업가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러한 예를 들어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드리죠. 어떤 지역에 금광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금을 캐려는 사람들이 벌떼처럼 그곳으로 몰려갔죠. 근데 그곳에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길목에 큰 강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람들은 자기들의 의견을 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으니까 돌아서라도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저 같으면 수영을 해서 건너가겠습니다.” 등등……. 사람들이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하며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업가는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입을 열었습니다.

“여러분은 왜 꼭 금만 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배를 한 척 사서 장사할 생각은 못하죠? 그런 상황이람 과도한 뱃삯을 요구한다 해도 다들 달라는 대로 줄 테니 태워만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강만 건너면 금광이 있을 테니까요.”

그 순간 스튜디오 안에 쥐죽은 듯 조용해졌답니다. 금을 캐러가는 것도 사실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지요. 따라서 돈을 벌 수 있다면 금을 캐지 않는 다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단순히 금 캐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원래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등장하는 회당장이 예수님을 찾아간 원래의 목적은 병든 딸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딸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이 집에 갔으나, 소녀가 죽었다는 이유를 들어 자고 있다고 말하는 예수님을 비웃지요. 그들은 예수님이 그 집에 간 목적을 모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집에 간 목적을 잃어버렸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것이지요.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원래의 목적을 간직하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렇게 원래의 목적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즉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합니다. 이 원래의 목적을 기억하는 믿음, 이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행복은 정당하고 건강한 소망을 이뤄 나가는 데 있다(아우구스티노).




인생 대역전하는 방법(이승헌)

성공하고 복 받는 비결은
절대 남 탓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이 나한테 있고,
내가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합니다.

부모나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면서
환경을 받아들여 극복하고 노력하다 보면
그때 자기의 삶이 덧셈에서 곱셈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남 탓을 하면
뺄셈을 하다가 마지막은 나눗셈을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서는 복이 달아납니다.
그것이 무서운 업입니다.

현실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면
덧셈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면서
곱셈으로 인생은 대역전이 됩니다.
그럴 때 그 인생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Chris Spheeris / Field Of 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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