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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음과 육신의 상처를 공감해 주시는 분-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8 조회수455 추천수2 반대(0) 신고
 

 

마음과 육신의 상처를 공감해 주시는 분- 윤경재

“바리사이들은 나가서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아시고 그곳에서 물러가셨다. 그런데도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시면서도, 당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중히 이르셨다.” “보아라, 내가 선택한 나의 종 내가 사랑하는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내 영을 주리니 그는 민족들에게 올바름을 선포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으리니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그는 올바름을 승리로 이끌 때까지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걸리라.”(마태12,15-21)

 

예수께서는 당신을 없애려하는 바리사이와 기득권자들의 모의를 아시고 물러나셨다고 마태오 저자는 기록합니다. 이 한 줄의 행간에서 예수께서 겪으셨을 아픔이 진홍색 피처럼 배어 나옴을 느낍니다. 예리한 칼에 베인 상처처럼 서서히 그러나 진하게 번지는 꽃의 향기 같은 느낌을 이 한 줄에서 받습니다. 하늘을 우러르며 얼마나 탄식하셨을지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종종 예수께서도 우리와 같이 피와 눈물을 지녔던 한 인간이셨다는 것을 잊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보다 더 큰 아픔을 참아내셨을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한 개인으로서 고통을 겪지만, 예수께서는 전 인류가 겪는 아픔을 당신 한 몸에 받으신 것입니다. 오죽하면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께서 느끼시는 안타까운 마음을 ‘splagchnizomai’ 즉 창자를 끊어내는 아픔이라고 12회나 표현하였을까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제일 먼저 사람들의 병을 치유해주시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치유 기적은 육신의 질병만 치유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육신과 영혼을 모두 건강하게 회복하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치유 방법은 어쩌면 간단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사야서 42,3절 야훼의 종의 노래에서 나오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라는 구절처럼 그를 꺾거나 심지를 끄지 않고 인정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죄인이 아니라 용서받았다고 선언하심으로써 병자를 보듬어 주셨습니다.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병자의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치유되었습니다.

 

현대 임상심리학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한두 개쯤 치유가 어렵고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감기에라도 걸리면 약을 지어먹고 길 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깨지면 얼른 치료를 받습니다. 하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아 절망하고 낙담하였다고 병원을 찾거나 누구에게 상담 받지는 않습니다. 그냥 저냥 쌓아두기만 합니다. 그러다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꺼번에 폭발하고 맙니다. 그런 상처는 점점 깊어져 실제로 암과 같은 육신의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우울증으로, 분노로 표출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게 큰 피해를 남기게 됩니다. 

마음의 병이란 그렇게 거창하거나 별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람만이 앓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의 눈에 띄는 이상한 행동을 해야만 병이 아닙니다. 대부분 한 번씩 하는 생각, 갖게 되는 심정, 불쑥불쑥 드는 충동들, 그런 것 속에서 이미 마음의 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우리는 그것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덮어버리고 삽니다. 아니 너무나 만연되어 있어 이쯤이야 하면서 넘겼는지도 모릅니다. 

심리 치료는 흔히 생각하듯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심리치료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은연중에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 첫 단계는 상대방의 상처받은 마음을 이해해주고 공감해 주는 것입니다. 즉, 상대방의 마음을 그가 느끼듯이 함께 느껴보고, 그렇게 느낀 것을 상대방에게 표현해줌으로써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이 타인에게 이해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타인에게도 공유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들어줌과 이해와 공유입니다. 그의 생각과 행동을 수정하거나 정정하려 들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점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큰 특징입니다. 비참한 인간의 처지를 끝까지 공감하신 분이라는 점이 바로 예수님의 주님 되심입니다. 

요사이 묵상방에 유웅열님께서 올려 주시는 스즈키 히데코 수녀님의 글 속에서 이런 면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만나면 대우주의 힘이 나를 통해 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서 그 사람속의 성스러운 것에 닿고, 그 순간 그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참된 자기가 눈을 떠서 그 사람의 운세가 행복한 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은 감각을 맛보는 것입니다.

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면 내 손이 자연히 그 사람에게 닿습니다. 호흡을 의식하고 있으면 차츰 그 사람과 일체감을 느낍니다. 병이 나았으면 좋겠다든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든지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대우주와의 일체감속에서 자연체가 된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입니다.

나를 통해 병자에게 전해지는 치유의 힘은 자기 치유력을 움직이게 하여 병을 치유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몸을 넘어서 그 사람의 영혼 깊은 곳에 깃들어 있는 본래적인 것, 즉 그 사람을 살게 하는 근원적 ‘생명 그 자체’에 도달하여 생명의 본질인 ‘순수한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

치유란 단지 몸의 치유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 모든 것을 통합하고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이때 치유를 받는 사람이 지니는 자세도 무척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자기 비난’과 ‘어리석음’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요한복음서 5,6절에서 예수께서는 병자에게 먼저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자세를 올바르게 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어둠속에 머물러 있는 그를 빛과 성숙의 단계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어서는 어려운 과정에 발을 내딛으려는 의지를 키워주셨습니다. 또한 그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올바름을 승리로 이끄시는’(마태12,20) 예수께서 인간의 병고를 치유해 주신 방법을 한시라도 잊지 말고 우리도 그대로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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