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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은 나의 목자" - 7.1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19 조회수814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7.19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                                  
예레23,1-6 에페2,13-18 마르6.30-34

                                                          
 
 
 
 
"주님은 나의 목자"
 
 


삶은 전쟁이라 하지만
며칠 전 모처럼 밭의 풀을 뽑으며
밭농사 역시 풀과의 전쟁임을 실감했습니다.
 
모종한 여린 나무들이 억센 잡초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아 농사도 때가 있구나,
  때를 놓쳐 잡초가 우거져 모종한 여린 것들을 덮어버리면
  질식해 죽겠구나.’
 
마치 억세고 거친 세상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착한 신자들이 연상 되었습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농사도 못 짓겠다.
  부지런히 내 삶을 가꾸고 돌보지 않으면
  억세고 거친 죄악의 잡초들 속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서 착한 목자 주님을 찾는 우리들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을 믿고 따를 때
비로소 세상 죄악의 잡초들 속에서도 힘차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착한 목자 주님을 찾으십시오.

이래야 죄악과 유혹의 잡초들 번성하지 못합니다.
 
거울을 통해 내 모습 환히 드러나듯
착한 목자 주님의 거울에 환히 드러나는 우리 내면의 모습입니다.
 
‘보고 배울 것이 없다.’
‘듣고 배울 것이 없다.’는 세상에
우리는 착한 목자 주님을 보고 배울 수 있고,
착한 목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수 있으니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사도들을 보십시오.
 
주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본연의 사명을 다한 후에
주님께 돌아와 보고하면서 자신을 점검하며 추스르지 않습니까?

착한 목자 주님은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을 찾지 않을 때
삶의 중심을 잃게 되어 삶의 내적질서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영육이 살기 위해 착한 목자 주님을 찾아 만나야 합니다.
 
하여 많은 이들이
착한 목자 주님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이 수도원을 방문합니다.
 
수도원에 사는 우리 수도자들 역시
매일 하루에도 일곱 번 성전을 찾아
착한 목자 주님을 만나 그 사이 있었던 일을 보고하곤 합니다.
 
세상살이 중에도 하루를 마치며
주님 앞에서 성찰 시간을 갖는 다면 영성생활에 큰 진보가 있을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찾아야 할 분이 착한 목자 주님이십니다.
 
사제나 수도자에게,
또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거기 주저 않지 말고 즉시 일어나
그 너머 우리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
착한 목자 주님께 다가가십시오.
 
주님을 바라봐야 넘어지지도, 냉담하지도 않습니다.
 
착한 목자 우리 주님은 이미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고한 분이기도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하느님께 보내 주신 착한 목자 예수님께서
늘 함께 계시기에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된 우리들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과 함께 외딴 곳에서 쉬는 시간을 마련하십시오.

이래야 죄악과 유혹의 잡초들 번성하지 못합니다.
 
사명을 다하고 당신께 돌아 와 보고를 끝낸 사도들에게
거룩한 휴식을 권하는 주님이십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이래서 피정이 필요합니다.
 
적절한 때 잘 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쉬는 것도 은총이요 능력이요
쉬는 것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막연히 쉬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쉬는 것입니다.
 
세상 것들의 중독에서 해독되어
참 자기를 찾는 시간이자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많은 영육의 질병들, 잘 쉬지 못해서 생기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너희는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 들여라.
  복되다, 주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
 
시편 말씀처럼
주님 안에서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보고 맛들이며 쉴 때
진정한 쉼입니다.

꼭 외딴곳이 마련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마련될 수 있는 외딴 시간의 장소입니다.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의 장소라도
주님을 만나는 곳이면 거기가 영육을 충전하는 거룩한 외딴곳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거룩한 휴식시간의 외딴곳은
바로 이 성전에서 수도형제들과 함께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 시간입니다.
 
주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기도하며 쉴 때
주님은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고
서로간의 장벽인 적개심을 허물어 버리십니다.
 
주 그리스도는 당신 안에서
우리 모두를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하느님과 화해를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니 주님 안에서의 외딴곳보다 더 좋은 외딴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도 주님은
은총 가득한 외딴곳 수도원 미사에 참석하신 분들과
피정중인 형제자매들을 당신의 평화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끊임없이 착한 목자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배우십시오.

제일 중요한 일이
하느님을 아는 일이고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바로 이게 지혜로운 삶의 비결입니다.
 
하여 끊임없는 성경공부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착한 목자를 알아보고 잘 따르기 위한 성경공부입니다.
 
세상 지식에 아무리 박학하다 해도
하느님을 모르면 다 쓰레기 지식일 뿐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들도
하느님에 대해 무지할 때 모두 눈 먼 바보들일뿐입니다.
 
탐욕에 눈 먼 똑똑한 바보들 널려있는 세상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점을 예리하게 통찰했습니다.
 
무지에서 벗어나 참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은
하느님 말씀 공부뿐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착한 목자 주님께서 우선 착수하신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쳐주신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가르쳐 줌으로
그들의 영혼에 불을 붙여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 발의 등불, 우리의 앞길을 비춰주는 빛입니다.
 
말씀이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어야
밝은 눈으로 착한 목자 주님을 뵐 수 있고,
말씀이 우리 마음의 귀를 열어주어야
밝은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배우지 못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 해야 할 공부가 성경공부, 말씀공부입니다.
 
과연 여러분의
마음의 눈의 시력은,
마음의 귀의 청력은 어느 정도 되겠습니까?


영혼의 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오늘입니다.

깊고 고요한 내적 삶보다는
얕고 시끄러운 외적 삶에
마음은 계속 거칠어지고 황폐해지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착한 목자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매일, 착한 목자 주님을 찾아 만나야 하고,
주님 안에서 쉬어야 하고,
주님께 말씀을 배워야
비로소 깊고 고요한 영적 삶에
저절로 시들어가는 죄악과 유혹의 잡초들 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외딴곳 수도원 미사 중,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쳐주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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