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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0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07-23 조회수424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10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12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13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14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15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6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미디어 법을 강행처리한 어제 우리 국회의 모습은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 같습니다. 언론을 독점하려고, 언론 재벌을 위해서 국민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은 어제의 모습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접하며 언론의 왜곡과 성경 말씀의 왜곡, 오늘은 이런 생각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부분적으로는 묵상해야 할 말씀이 있지만 전체적인 말씀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성경 말씀이라 할지라도 공감할 수 없는 말씀은 공감할 수 없는 것이므로 오늘은 부득이 비평적 관점에서 몇 자 적어 보려고 합니다.

마태오 복음 13장은 하늘 나라에 대하여 여섯 가지 예(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 가라지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 누룩의 비유, 보물의 비유와 진주 상인의 비유, 그물의 비유)를 들어서 비유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하시기전에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서 하늘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를 알려 주셨으며 오늘 복음은 하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하는 이유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어떤 형상이나 사실을 비유로 설명하는 이유는 이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인식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의 경험은 체험을 통하여 얻은 직접적인 경험과 지식 등을 통하여 얻은 간접적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를 설명해 주셔도 민중들은 하늘 나라를 경험해 본 적도 없고, 또 하늘 나라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전 지식도 전무하므로 이를 사실 그대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직접 경험한 사실은 사실 그대로 알려 줄 수 있지만 하늘 나라와 같은 관념적인 것은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직접 경험한 사실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경험을 통하여 인식할 수 없으면 믿지를 않을 것이므로 이럴 경우에는 부득이 상대편이 알고 있는 어떤 사실에서 유사성을 찾아 이를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하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음에도 오늘 말씀은 이런 뜻이 아니고 군중들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용서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라고 말씀하고 계시므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서의 난해구절 중에서도 난해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난해한 구절이 아니라 잘못된 구절이 더 적합한 말입니다. 마르코와 루카 복음서에는 오늘 복음은 아주 짧은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에 대하여는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루카 8,10. 마르 4,1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이런 옹졸한 말씀을 하실 분이라고 믿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이기 때문에 이 말씀도 예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우리 교회는 이를 제대로 알려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에 대하여는 모두가 침묵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라도 잘못된 말씀은 잘못된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양심있는 신앙인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성경말씀(이사 6,9-10)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로 구약에서 이미 약속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복음 전파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복음서 기자의 생각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킨 경우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는 오늘 말씀이 예수님의 신원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함에 있어서 유용하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있으며 이런 비난에 마땅히 대처할 방도가 없어 보입니다. 비유에 대하여 말씀하신 이유는 비단 오늘 복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언자를 통하여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세상 창조 때부터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그리된 것이다.](마태 13. 35)고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비하신 분으로 설명하기 위해서 복음서 기자는 두 번에 걸쳐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예수님을 구약에 꿰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진실을 알리는 광야의 목소리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진실을 알리는 역할은 언론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민중들에게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는 어떤 목적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를 정반대의 의미로 왜곡시켰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이 어느 특정세력에게 독점되면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이런 왜곡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어제 우리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지고 갈 멍에는 복음서의 오점으로 영원히 남을 오늘 복음과 오버랩 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으로 인해 잘못된 선민의식을, 우리는 선택받은 사람으로 생각하여 남을 배척하는 그러한 잘못된 신앙을 갖지 않기를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도 우리에게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기에 진실을 알리는 언론만큼은
그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도록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저희의 기도가 부족함을 알고 있사오나 부디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시비지심의 성령님께서 이 모든 것을 판단하시어
저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을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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